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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BACH26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2번 F장조 BWV1047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 작곡되었던 1720년을 전후한 시기는 바흐가 가장 의욕적으로 활동을 때이다. 쾨텐 궁정악단의 악장으로 봉직하며 왕성한 장년의 예술적 의욕으로 쾨텐 공을 위해 많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작곡하고 있었다. 1720년에 《오르간을 위한 전주곡과 푸가 g단조》를 비롯하여 《건반악기를 위한 반음계적 환상곡》,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무반주 첼로 소나타》, 《2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등이 작곡되었고, 1722년에는 《프랑스 모음곡》, 《영국 모음곡》, 《관현악 모음곡 C장조》와 《모음곡 b단조》,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1권》 등이, 그리고 1723년에는 《인벤션》 등 명작이 연달아 쓰여졌다. 이와 같이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이 만들어지는 큰 수확이 있었던 이 .. 2021. 1. 9.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1번 F장조 BWV1046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그의 모든 작품들 가운데 최고의 걸작 중 하나인 동시에 이 분야의 합주 협주곡 중에서도 찬연히 빛나는 명작으로 코렐리나 헨델의 합주협주곡도 이에 미치지는 못한다. 바흐는 당시로서는 가능한 모든 악기 편성으로 그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인 재능과 악상을 최대한 발휘해서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여섯 곡의〈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작곡했다. 형식적으로는 물론 코렐리나 비발디, 혹은 헨델이 쓴 합주 형태인 몇 개의 독주 악기와 합주부로 이루어진 '콘체르토 그로스'라고 하는 이른바 합주 협주곡의 형태를 따르고 있어서 근대적 독주 협주곡과는 다르다. 그러나 비교적 다양한 악상과 다채로운 악기 편성, 그리고 독주와 합주의 대비와 유기성은 근대적 의미에 있어서의 협주곡의 선구적 역할을 하.. 2020. 12. 19.
서양 음악의 아버지, 바흐 V 바로크 음악의 최대이자 최후의 작곡가 바흐는 1750년 7월 28일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바흐협회가 1851년부터 1900년까지 반세기에 걸쳐 발간한 그의 작품은 미사곡, 수난곡, 오라토리오, 모테트, 칸타타 등 60여 권에 달합니다. 이들 작품들은 양에서나 질에 있어서 인ㄹ 역사상 영원히 넘을 수 없는 음악의 고봉이며,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모든 음악가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을 만큼 바흐의 음악은 '음악의 성서'와도 같이 인정되고 있습니다. 특히 바흐의 《평균율 곡집》은 건반악기를 위한 음악의 구약성서로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평균율 곡집》은 그야말로 바흐 예술의 총화라 할 것입니다. 바흐는 일생을 철저하게 가정 위주로 보낸 야심없는 한 시민이었습니다. 자기가 작곡하고 연주한 작품을 .. 2020. 12. 4.
서양 음악의 아버지, 바흐 IV 대부분의 바흐 연구가나 음악사 학자들은 바흐의 생애를 3기로 나누고 있습니다. 1708년부터 9년간의 바이마르 궁정 오르가니스트 시대(주로 칸타타와 오르간 곡의 작곡에 전념)를 제1기로, 제2기는 1717년부터 1723년까지 괴텐 궁정의 악장시대(기악곡, 합주곡, 실내악곡 등을 작곡), 마지막으로 제3기는 라이프찌히 성 토마스 교회 부속 토마스 학교의 칸토르(음악감독) 시대로 구분합니다. 라이프찌히 시대의 바흐는 매우 바쁘고 고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학교장, 사회장, 법원장으로서 사회 참여는 물론 교육과 4개 교회의 연주의 감독도 혼자서 해냈습니다. 이로인해 얻어지는 연수입 7백탈러와 임시수입으로 많은 자녀들을 훌륭하게 가르칠 수 있었으며, 가정생활은 행복했습니다. 이렇듯 복잡한 속에서도 바흐는 "요한수.. 2020. 11. 26.
서양 음악의 아버지, 바흐 III 1717년 11월 바흐는 쾨텐의 레오폴드 공에게 초빙되어 다시 바이마르를 떠나 쾨텐의 궁정 악장이 되었는데, 쾨텐 궁정의 오케스트라는 아직까지 그가 대해 본 적이 없는 우수한 악단이었습니다. 바흐의 많은 기악곡과 합주곡은 대부분 이곳에서 우수한 오케스트라 덕분에 쓸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많은 실내악도 여기서 작곡되었으며, 유명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도 이곳에서 만들어졌으며,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1권》도 착수되었습니다. 젊은 영주 레오폴드 공은 음악 마니아로 여행할 때도 반드시 바흐와 함께 했습니다. 1720년 5월부터 7월까지 바흐는 레오폴드 공과 보헤미어의 휴양지 칼스바트에 여행을 하였는데, 두 달만에 돌아온 바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비탄에 쌓인 4명의 자식들뿐이었습니다. 아내인 바르바르가 .. 2020. 11. 22.
서양 음악의 아버지, 바흐 II 아른슈타트에서의 바흐는 그야말로 다감한 청춘을 보낸 것 같습니다. 악평이 나있는 성가대원 가이어스바흐와의 격투나, 여인의 출입을 금하는 교회 성가대석에 낯선 여인을 입장시킨 것 등 화제가 적지 않았습니다. 1705년 말 바흐는 뤼벡에서 오르간의 대가인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 ~ 1707)가 연주회를 연다는 이야기를 듣고 1개월의 휴가를 얻어 도보로 80Km를 걸어 배우기도 하고 연주회를 감상했다고 합니다. 꿈과 같은 뤼벡에서의 4개월은 바흐에게 있어서 커다란 수확이었으나 휴가를 3개월이나 넘긴 그는 직무태만으로 교회에서 질책을 당해야 했습니다. 또한 합창 반주를 아무렇게나 했다고 비난을 받은 바도 있었습니다. 북스테후데의 호방한 작풍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는 유명한 《토카.. 2020.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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