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음악의 최대이자 최후의 작곡가 바흐는 1750년 7월 28일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바흐협회가 1851년부터 1900년까지 반세기에 걸쳐 발간한 그의 작품은 미사곡, 수난곡, 오라토리오, 모테트, 칸타타 등 60여 권에 달합니다.
이들 작품들은 양에서나 질에 있어서 인ㄹ 역사상 영원히 넘을 수 없는 음악의 고봉이며,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모든 음악가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을 만큼 바흐의 음악은 '음악의 성서'와도 같이 인정되고 있습니다. 특히 바흐의 《평균율 곡집》은 건반악기를 위한 음악의 구약성서로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평균율 곡집》은 그야말로 바흐 예술의 총화라 할 것입니다.
바흐는 일생을 철저하게 가정 위주로 보낸 야심없는 한 시민이었습니다. 자기가 작곡하고 연주한 작품을 출판하여 돈도 벌고 명성을 떨치려는 생각은 아마 꿈에도 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관심은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과 교회 뿐이었습니다. 그는 경건하게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가정을 충실하게 가꾸는 것이 소망이자 목표였던 사람입니다. 그랬던 탓인지 모르나 그의 음악은 명성을 떨치지 못한 채 약 100년 동안이나 망각 속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처럼 그가 '음악의 아버지'로 추앙된 것은 1850년 이후부터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흐의 작품에는 작품번호가 없습니다. 그의 작품이 오늘날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두번째 부인인 안나 막달레나가 정서를 하고 정리해 둔 데 힘입은 바가 큽니다.
바흐의 음악은 한마디로 말해서 이지적이며 문법적이라고들 말하며, 기법은 대위법과 푸가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멜로디는 풍부하며 복잡하기 이를데 없는 대위법으로 한없이 아름답게 표현된 반면 그 밑바닥에는 종교적인 시념에 가득차 있습니다.
바흐의 만년이 시대적 상황의 변화로 인해 불행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훌륭한 아들들과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한 것이 그의 예술을 다음 시대에 전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위협에 떨던 독일 사람들이 문화적 결속을 구했을 때 바흐는 '인도하는 별'이 되어 역사의 정면에 서게 되었습니다. 중세 이래의 음악문화를 집대성한 작곡가로서의 노력이 보답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바흐를 배운다는 것은 바로 대위법의 전통을 배우는 것으로 이해되게끔 되었습니다. 따라서 바흐는 유럽 음악의 고전으로 지금도 그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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