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7년 11월 바흐는 쾨텐의 레오폴드 공에게 초빙되어 다시 바이마르를 떠나 쾨텐의 궁정 악장이 되었는데, 쾨텐 궁정의 오케스트라는 아직까지 그가 대해 본 적이 없는 우수한 악단이었습니다. 바흐의 많은 기악곡과 합주곡은 대부분 이곳에서 우수한 오케스트라 덕분에 쓸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많은 실내악도 여기서 작곡되었으며, 유명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도 이곳에서 만들어졌으며,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1권》도 착수되었습니다.
젊은 영주 레오폴드 공은 음악 마니아로 여행할 때도 반드시 바흐와 함께 했습니다. 1720년 5월부터 7월까지 바흐는 레오폴드 공과 보헤미어의 휴양지 칼스바트에 여행을 하였는데, 두 달만에 돌아온 바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비탄에 쌓인 4명의 자식들뿐이었습니다. 아내인 바르바르가 세상을 떠나 장례도 이미 끝난 후였습니다. 7명의 자녀를 둘 정도로 부부 금슬이 좋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던 바흐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었었습니다.
바흐는 이듬해 12월 3일 궁정악사의 딸인 안나 막달레나 뷔르켄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미모의 소프라노 가수인 막달레나는 가정에 충실하고 어진 아내였습니다. 그녀와의 사이에 바흐는 6남 7녀를 두게 됩니다.
막달레나와 결혼 후 1722년 바흐는 프레데리카 제후비가 음악을 싫어해서 음악열이 식은 레오폴드 공에게 실망하여 쾨텐 궁정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안락한 생활보다는 더욱 음악적인 환경을 원했던 바흐는 그 해 말에 요한 쿠나우의 후임이 되어 라이프찌히 성 토마스교회의 합창장으로 초빙되어 갔습니다. 그의 만년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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