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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하이든 예술의 내적 법칙(The inner law of Haydn's art) 바그너는 하이든의 교향곡이 춤의 이상화를 표현하였다고 말하였다. 그것은 단지 3악장과 4악장, 즉 미뉴에트와 피날레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이다. 그러나 두 번째 악장(안단테, 아다지오 혹은 라르고)은 춤의 유형에 포함시킬 수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리트 유형인 것이다. 초기 교향곡이나 4중주에서도 이미 그러하였다. 두 번째 악장의 가창적 성격은 하이든이 발전하는 동안, 특히 그가 모차르트의 음악을 알게 된 이후, 더욱 강화되었다. 적어도 첫 번째 악장은 춤의 동인(動因)과 연관될 수 있다. 1악장의 형식은 - 때때로 매우 복잡한- 정신적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느린 도입부 - 특히 후기 작품에서의 도입부는 고상한 열정(Pathos)에 도달하여 춤에 대한 그 어떤 상상과 최소한의 연관도 지을 수 없게끔 만.. 더보기
하이든의 아이디어(Haydn's idea) 음악에 프로그램적 아이디어를 짜 넣는 것 역시 하이든의 지칠 줄 모르는 창조정신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것은 오라토리오의 그 유명한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다. 즉 소위 에 나오는 카오스(혼돈)에 대한 표현, 해돋이 및 여러 종류의 동물에 대한 기악적 묘사가 그것이다. 이와 비슷한 수법을 하이든은 그의 오케스트라 작품에서도 구사하였다.  '낮(Le Midi)'이라는 별명을 가진 교향곡은 두 편의 자매 작품을 가지는데, '아침(Le Martin)'과 '저녁(Le Soir)'이 그것이다.    하이든에게서는 이와 같은 종류의 프로그램적 아이디어를 사용한 많은 다른 예들이 보인다. 과 같은 단순히 묘사적인 형태에서 조차도 그러한 예를 볼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연주자들이 차례차례 자신의 보면대 등을 끄고 무대.. 더보기
하이든의 교향곡(Haydn's symphonies) 하이든은 104곡의 정규 교향곡과 1곡의 협주교향곡을 포함한 108곡의 교향곡을 작곡하였다. 4중주보다 더 많은 교향곡을 쓴 것이다. 그 외에, 하이든은 이른바 수많은 디베르티 멘토(Divertimento), 노투르노 (Notturno), 카사치온(Cassation)의 작품을 남겨놓았다. 이들 중에 몇몇 곡은 4중주 형태로도 존재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처음에는 5악장으로 만들어졌다. 두 개의 미뉴에트 악장이 들어간 것이다. 하이든은 훗날이 곡들의 악장 수를 4악장으로 줄였다. 때때로 느린 템포의 서주부로 시작하는 알레그로 악장 - 가요 형식 또는 변주곡 형식의 아다지오 혹은 안단테 악장 - 미뉴에트 악장 - 대부분 론도 유형의 피날레 악장이 바로 그것이다. 기악곡의 악장은 사용 가능한 악기들에 따라 조.. 더보기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6번(Sibelius Symphony No. 6) 시벨리우스는 1923년에 교향곡 6번에 대해 "첫눈의 냄새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다른 작곡가들이 칵테일 만들기에 몰두한다면 나는 순수한 차가운 물을 대접하고 싶다."     악보를 보면 시벨리우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다. 첫 페이지부터 고풍스러운 다성음악과 단순한 선법이 간소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현악 성부들은 단 하나의 임시표에도 오염되지 않아 무채색 풍경을 이루며, 음표 머릳가 텅 빈 긴호흡의 2분음표와 온음표만이 오선지를 채우고 있다. 그야말로 음악 본연의 순백의 상태, 정지 상태를 보인다.    첫눈의 냄새는 교향곡의 나중에 가서 눈보라로 발전하면서 찬연히 빛나 눈을 멀게 하겠지만, 처음에는 요란한 표정 없는 음악적 묘사에 그친다. 이 음악이 .. 더보기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6번이 왜 '비창'일까?(Why is Tchaikovsky's Symphony No. 6 "Pathétique"?) 러시아 음악가 중 국제적으로 가장 명성을 떨친 사람은 차이코프스키일 거예요. 만약 러시아 음악사에 차이코프스키가 없었다면 러시아의 교향곡은 볼품이 없었을 것입니다. 「비창 교향곡」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교향곡으로서는 열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자주 연주되는 레퍼토리죠. 차이코프스키의 대표적 작품인 교향곡 제6번 일명 '비창'은 1893년 10월 28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차이코프스키 자신의 지휘로 초연을 했는데, 제4악장 마지막 부분이 조용히 끝나기 때문에 박수를 받지 못했어요. 차이코프스키는 연주 4일 만에 한 식당에서 냉수를 마시고 콜레라에 걸려 5일 후인 11월 6일 숨을 거두었어요. 그로부터 12일째 되는 날 이 곡이 재연되었을 때 연주 홀은 박수 대신 눈물바다를 이뤘고, 차이코프스키의.. 더보기
오트마 슈위트너(Otmar Suitner, 1922~2010) 작품에 대한 성실한 접근에서 들려오는 구동독의 음악적 전통 오트마 슈위트너는 20세기의 친숙하게 알려진 지휘자 중 한 명이다. 그럼에도 슈위트너를 말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특별히 강한 개성을 가지지 않은 친한 친구에 관해 말할 때 느끼는 곤란함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슈위트너를 개성이 없는 지휘자라는 것은 아니다. 정통적인, 게다가 친숙한 지휘자를 말하는 어려움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의 곤란함은 그것뿐만 이 아니다. 슈위트너 역시 시대의 산물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라는 베일에 가려져 왔고 그것이 그의 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볼 수 없게끔 하고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슈위트너는 1964년 이래 4 반세기에 걸쳐 베를린 국립 가극장 음악 총감독.. 더보기
쿠벨릭(Rafael Kubelik, 1914~1996) 쿠벨릭은 명바이올리니스트 얀 쿠벨릭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발휘해 프라하 음악원 졸업 후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는데, 1936년에 어린 나이로 체코 필의 지휘 무대에 서고 1941 년에는 수석 지휘자가 되었다. 1939년부터는 부르노 가극장의 음악 감독도 역임하는(1941년까지) 등 체코의 젊은 지휘자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 나갔다. 1946년에 시작된 음악제 첫 회 콘서트를 지휘했던 사람이 당시 32세였던 쿠벨릭이었다. 그러나 1948년 공산당 독재가 성립되자 쿠벨릭은 조국을 떠나(쿠벨릭의 국적은 스위스로 되어 있다) 국제 활동을 시작했다. 쿠벨릭은 1950년에서 1953년 사이에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 1955년에서 1958년에는 코벤트가든 왕립 가극장 관현악단의 .. 더보기
반트(Günter Wand, 1912~2002) 꼼꼼하고 빈틈없는 접근, 거장 시대의 감흥 반트가 북독일 방송 교향악단과 녹음한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8번은 그야말로 일생에 단 한번 들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위대한 연주라고 할 수 있다. 반트의 이 음반은 좋다. 정말 굉장하다. 원래 브루크너의 제8번은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곡이었는데, 반트의 연주는 비할 데 없는 아름다운, 우주와 같은 광대한 스케일, 표현의 절실함을 저절로 드러내 준다. 삶과 죽음, 물질과 정신, 세계에 대한 경외와 악의 없는 정신적 상승 사이를 대담하게 횡단하는 이 곡의 초고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당시 작곡가의 제자, 친구 누구 한 사람 이 곡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만큼 이 곡은 뛰어나고 연주 또한 흠이 없다. 이 연주에서 반트의 강점은 우선 각각 장면에서 템포와.. 더보기
브람스 교향곡 제2번 D장조 작품 73(Brahms Symphony No.2 D Major, Op.73)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이 극적이고 압박감을 준다면 제2번은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흐른다. 마치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에서 걱렬한 투쟁으로 느끼는 피로감을 교향곡 제6번 '전원'에서 완전히 전환시키는 것과 상통한다. 그래서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을 교향곡 제1번을 베토벤의 교향곡 제10번이라고 하고, 이 교향곡 제2번을 브람스의 전원교향곡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이 교향곡은 단시일에 완성되었다. 1877년 여름 페르차하에서 초안을 만들고 가을에 바덴바덴에서 완성했다. 브람스가 잠시 전원 생활을 하며 이 곡을 썼다고해서 전원 풍경을 묘사한 것은 아니다. 작곡 순서는 1악장, 4악장, 그 후 중간의 2악장, 3악장 순으로 진행 되었으며, 자필 초고를 클라라 슈만에게 선물했다고 전해진다. 정식 초연은 1877.. 더보기
지휘법 왜 배워?? 현대 지휘자가 직면해야 할 문제는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이것은 지휘법이 단순히 박자치기나 사태를 정리하는 일에서 고도로 분화된 기법으로 전반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접어 들어 교향곡이나 오페라의 스코어가 점점 복잡해 졌고, 바그너 시대에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로 연주의 명료·정확·원활함이 당연한 요구로 된 것이 그 원인이다. 고도로 세련된 연주를 요구하게 된 것은 방송이나 음반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전에는 완벽한 연주는 유럽의 극히 제한된 도시에서, 마침 운좋게 콘서트홀에 동석한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동안에 이와 같이 드문 연주가 기계를 통해서 재생되어 전세계의 청중에게 보급되었다. 그 결과 우수한 테크닉의 표준이 새로 생기..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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