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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깃불 앞에서 대구에서의 하루가 길었다. 친구와 마주 앉아 나눈 비즈니스 미팅은 단순한 일 이야기를 넘어, 서로의 길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어 경산으로 자리를 옮겨 경주 프로젝트를 위한 워크숍을 마쳤다. 머릿속에 쌓인 생각의 갈래들이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채 맴돈다.워크숍을 마친 경산의 마당에 모깃불을 피웠다. 마른 나뭇가지와 풀잎이 타들어가며 피워 올리는 흰 연기가 어둠 속으로 천천히 솟아오른다. 불씨는 작지만 그 빛은 분명하고, 연기는 흩어지면서도 한 방향으로 흐른다. 마치 오늘 하루 동안 오간 대화와 구상들이 한데 모여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것처럼.내일은 경주 현지 답사가 있다. 책상 위 자료와 회의실의 논의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땅을 직접 밟고 공기를 느끼는 시간이다. 프로젝트의 진짜 얼굴은 늘 현장에서 ..
『오케스트라 경영학: 하모니의 역설』 - 책이라는 다리 어제는 이발을 하려고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퇴근했다. 머리를 단정히 하고 나면 한 주의 피로가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곤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미용실로 향했다.미용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으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에서 온 톡이었다. 누구신가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이내 떠올랐다. 뉴질랜드에 계신 교포 한 분이었다. 내 책 『오케스트라 경영학: 하모니의 역설』이 출간되었을 때, 멀리 남반구에서 DM을 보내오셨던 분. 6월 말에 잠시 고국에 들르는 길이 있으니 그때 책을 사고 싶다고 하셨던, 그 반가운 독자였다.그분은 저녁에 시간이 되느냐고 물어 오셨다. 마음 같아서는 한걸음에 달려가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이발을 마치고 나면 딸과의 약속이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찾아주신 분을 직접 뵙지 못하는..
연결의 시대를 살아가려면 연결의 중심에서 커넥터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촘촘하게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지구 반대편 사람과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한 번의 클릭으로 수천 명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정보와 사람과 자원이 끊임없이 흐르는 거대한 그물망 속에 우리 모두가 놓여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연결이 흔해진 시대일수록, 단순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연결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느냐다. 수많은 점들 가운데 하나로 머물 것인가, 아니면 점과 점을 이어주는 매듭, 곧 커넥터가 될 것인가.커넥터란 단순히 인맥이 넓은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명함을 많이 가진 사람이 곧 커넥터인 것은 아니다. 진정한 커넥터는 서로 다른 세계를 잇고, 흩어져 있던 사람과 정보와 기회를 의미 있게 연결해내는..
자유롭지만 고독하게(Frei aber einsam) 브람스의 신조에서 배우는 음악과 경영의 철학독일어 Frei aber einsam은 "자유롭지만 고독하게"라는 뜻이다. 이 문구는 독일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Joseph Joachim의 좌우명이었으며,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Johannes Brahms도 이 정신에 깊이 공감했다. 브람스는 자신의 작품 속에 F-A-E라는 음형 모티브를 숨겨 넣으며 이 신념을 음악으로 표현했다.이 짧은 문장은 예술가의 삶뿐 아니라 현대 경영자에게도 놀라운 통찰을 제공한다.1. 음악에서의 자유와 고독브람스는 낭만주의 시대를 살았지만 유행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았다. 당시 음악계는 Richard Wagner와 Franz Liszt를 중심으로 한 혁신적 음악과 전통주의 음악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브람스는 어느 한쪽에 완..
심부재언, 시이불견(心不在焉, 視而不見) — 보이지만 보지 못하는 경영자에게 『대학(大學)』은 말한다.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나는 지휘대에 서서 이 문장을 자주 떠올린다.오케스트라 연습 중에 이런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한 단원이 악보를 눈앞에 두고, 활을 긋고,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소리가 죽어 있었다. 기술적으로는 완벽했다. 음정도 맞고, 리듬도 정확했다. 그런데 음악이 없었다.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몸은 연주석에 있었으나, 정신은 이미 연습이 끝난 뒤의 저녁 식사 자리를 향해 떠나 있었던 것이다.경영 현장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회의실 안의 부재(不在)임원 회의를 생각해 보자. 열두 명이 테이블을 둘러앉아 있다. 모두가 자료를 ..
모든 악장은 같은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는가 - 부서가 아닌 비전으로 조직을 지휘하라 마케팅팀의 언어와 개발팀의 언어는 다르다. 재무팀이 보는 세상과 영업팀이 보는 세상은 다른 악장처럼 들린다. 스타트업의 초기 생존 전략과 성숙기의 확장 전략은 완전히 다른 템포를 가진다. 이 모든 것이 제각각이어도 괜찮다.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서로 달라도 괜찮듯이.단, 조건이 하나 있다.모든 악장이 결국 하나의 주제를 향해 수렴되어야 한다는 것.1악장에서 승리의 찬가를 불렀는데 2악장에서 갑자기 패배의 장송곡이 나온다면, 그것은 곡 전체의 붕괴다. 각 부서의 목표가 제각각으로 달려가는 동안, 지휘자인 경영자는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모든 악장은 같은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는가. 개발팀이 만드는 제품과 마케팅팀이 약속하는 가치와 경영자가 선언한 비전이 — 연주가 끝났을 때 하나의 이름으로 기억되..
무대 위의 작은 거인, 그리고 바톤의 무게 - 딸아이의 베토벤 교향곡 7번 졸업 연주를 보고 무대 위 조명이 켜지고, 한 청년 지휘자가 포디움에 올랐다. 내 눈에는 여전히 품 안의 아이 같기만 한 딸아이였다. 그러나 그 아이가 단원들을 향해 바톤을 들어 올리는 순간, 객석에 앉은 나의 호흡도 함께 멈췄다. 관현악 지휘 전공 대학원 졸업 연주회. 그것은 한 명의 연주자가 마에스트라라는 무거운 이름을 짊어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엄격한 통과의례였다.선택한 곡은 베토벤 교향곡 7번. 흔히 리하르트 바그너가 '무도의 화신(Apotheosis of Dance)'이라 평했을 만큼, 강렬한 리듬과 에너지가 전편을 지배하는 대작이다. 비록 예산과 환경의 제약으로 완벽한 풀 편성 오케스트라를 무대에 올리지는 못했지만, 지휘자에게 이는 오히려 시험대와 같다. 빈약한 소리의 빈틈을 지휘자의 명확한 비트와 리더십으로 ..
어제라는 악보에 새겨진 두 개의 선율 어제의 하루는 마치 서로 다른 색채를 지닌 두 개의 악장이 하나의 교향곡으로 완성되는 과정 같았다. 서울 강남의 한복판, 트렌디함과 비즈니스의 에너지가 교차하는 신사동 사무실에서 시작된 오전의 시간은 치밀한 이성과 거시적 비전이 필요한 '전략의 공간'이었다.오랫동안 준비해 온 '팔만대장경 프로젝트' 회의. 천년의 세월을 담은 문화적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확장하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이제 단순한 아이디어를 넘어 구체적인 실행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회의실의 공기는 뜨거웠고, 논의는 깊었다.핵심 화두는 프로젝트를 지탱할 '세부 조직의 구성'과 브랜드의 얼굴이 될 '로고 및 CI'의 확립이었다. 무형의 가치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수많은 전문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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