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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QR에서 NFC, 그리고 Tagless까지 기술은 사람의 행동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한다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QR코드를 찍습니다. 식당에서 메뉴를 보고, 행사장에 들어가고, 각종 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찍습니다. 조금 더 익숙한 사람은 휴대전화를 단말기에 대기만 하고 인증을 끝냅니다.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져 보겠습니다.기술이 발전한다는 건 기능이 많아진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사람이 할 일이 줄어든다는 뜻일까요?리모컨 버튼이 50개로 늘어났다고 텔레비전 보기가 편해진 건 아니었습니다. 정작 우리가 쓰는 버튼은 전원, 채널, 볼륨 정도였으니까요.TARA-PASS의 인증 방식을 이해할 때도 이 질문이 중요합니다. 타라패스는 NFT 기반 티켓을 발급받은 뒤 Tagless, NFC, QR 세 가지 방식 가운데 하나를 골라 모바일로 입장하는 서비스입니다..
홍차의 맛은 산소가 결정할까: 한 잔 속에 숨은 과학 차를 마실 때 우리는 무엇을 먼저 느낄까?잔에 담긴 붉은빛일 수도 있고, 코끝을 스치는 향일 수도 있다. 입안에 퍼지는 부드러움이나 혀끝에 남는 떫은맛이 차의 첫인상을 정하기도 한다.그런데 이 모든 감각 뒤에서 일하면서도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가 있다. 산소다. 늘 곁에 있어서 고마운 줄 모르는 오래된 친구 같은 존재다. 우리는 1분에 열 번 넘게 산소를 들이마시지만, 홍차를 마시며 "오늘 산소가 일 잘했네"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공기 중에 늘 있는 산소가 어떻게 홍차의 색과 향, 맛을 바꿀까. 차 한 잔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찻잎이 공기와 처음 만나는 순간으로 돌아가 보자.1. 녹색 찻잎이 붉은 홍차가 되기까지녹차와 홍차는 서로 다른 나무에서 나는 차가 아니다. 둘 다 같은 차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메갈뤼노(μεγαλύνω) 찬양은 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크기입니다.성경을 읽다 보면 조금 낯설지만 마음에 오래 남는 단어를 만납니다. 그리스어 '메갈뤼노(μεγαλύνω)'가 그렇습니다. ‘크게 하다’, ‘위대하게 하다’, '확대하다’라는 뜻인데,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며 존귀하게 여긴다는 의미로 쓰입니다.누가복음 1장 46절에서 마리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여기서 '찬양하며’가 바로 메갈뤼노입니다. 라틴어 성경은 이 구절을 "마그니피캇(Magnificat)"으로 시작하고, 영어 성경은 "My soul doth magnify the Lord"라고 옮겼습니다. 'magnify’는 돋보기(magnifying glass)에 들어 있는 바로 그 단어입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하나..
오케스트라는 공연단체인가, 콘텐츠 플랫폼인가 오케스트라를 생각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무대 위에 가지런히 앉은 연주자들, 지휘자의 지휘봉,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 그리고 마지막 음이 끝난 뒤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일 것이다. 물론 악장 사이에 나온 박수와 그 박수를 친 사람을 향한 따가운 눈빛까지 떠올리는 분도 있을 것이다.오케스트라는 분명 공연단체다. 연주자들이 모여 음악을 만들고, 그 음악을 관객에게 전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그런데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오케스트라의 역할은 공연이 끝나는 순간 함께 끝나는 것일까?그렇다면 오케스트라의 사업은 공연을 기획하고, 연주자를 섭외하고, 무대에 올리고, 박수를 받는 것으로 끝난다. 다음 공연 때 같은 과정을 다시 밟으면 된다. 매 시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셈이다.하지만 오케스트라가 가진 음악..
산정호수에서 배운 느긋함, 그리고 오리배의 철학 여행을 떠날 때마다 나름의 목적이 있다. 어떤 날은 새로운 풍경을 보러 가고, 어떤 날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러 간다. 그리고 가끔은 아무 목적 없이 집을 나선다. 물론 "오늘은 그냥 발길 닿는 대로"라고 말하면서 주차장, 맛집, 카페 위치를 미리 검색해 두는 걸 보면 인간은 참 목적 지향적인 동물이다. 발길이 닿을 곳까지 미리 정해 두는 셈이니까.이번에 향한 곳은 포천 산정호수였다.산정호수(山井湖水)라는 이름에는 '산속의 우물’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명성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산 한가운데 우물을 파 놓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운치가 있다. 산과 물이 만나고, 그 사이로 길이 나 있고, 사람은 그 길을 걷는다. 설명만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만 마음이 편한 것과 다..
기업 행사에서 오케스트라가 할 수 있는 일 연주를 넘어, 조직의 메시지와 경험을 설계하는 음악기업 행사에 오케스트라가 나온다고 하면 대부분 비슷한 장면을 떠올린다. 행사 시작 전 로비에서 연주하는 현악 앙상블, 시상식의 팡파르, 만찬장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 같은 것들이다. 이때 참석자 대부분은 음악을 듣기보다 명찰을 찾고, 자리 배치표를 확인하고, 반가운 얼굴과 피하고 싶은 얼굴을 구분하느라 바쁘다. 그동안 음악은 조용히 ‘고급스러운 공기’ 역할을 한다.물론 그것도 오케스트라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를 행사를 고급스럽게 꾸미는 배경음악으로만 쓴다면, 최고급 오븐을 사서 빵 데우는 데만 쓰는 것과 비슷하다. 쓸 수 있는 가능성의 상당 부분을 놓치게 된다.오케스트라는 서로 다른 악기들이 모여 하나의 음악을 완성하는 조직이다. 악기마다..
가을이 봄을 닮은 날, 멘델스존을 다시 쓰다 - October Piano Letter 10월의 피아노 편지 한 통을 부쳤습니다.창밖에는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는데,피아노 위에는 봄에 쓰다 만 편지 같은 멜로디가 놓여있더라고요.이번에 작업한 곡은 October Piano Letter 입니다.멘델스존의 에서 영감을 받아,제가 Maestro Nova라는 이름으로 재해석한 첫 번째 가을 피아노곡이에요.원래 이 곡의 제목은 '봄의 노래'인데,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가을의 노래'로 더 많이 불린대요.그 이유를 연주해보니 알겠더라고요. 너무 밝지도, 너무 슬프지도 않은 그 온도.딱 10월 오후 4시 햇살 같은 온도였어요.이 곡을 이렇게 들어보세요.피아노 연주 영상을 넣지 않고, 일부러 아무도 없는 가을 풍경 영상을 배경으로 깔았어요.따뜻한 아르페지오가 물결치듯 흐를 때, 화면에는 은행잎이 떨어진 숲..
숙박과 공연을 결합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공연이 끝나면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대부분은 주차장으로 간다. 그리고 출차를 기다리는 줄에서 앙코르의 여운을 조금씩 잃는다. 멀리서 온 관객은 사정이 더 급하다. 커튼콜 박수를 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막차 시간을 계산한다. 브라보를 외치는 입과 시계를 보는 눈이 따로 움직이는 셈이다. 공연은 끝났고, 관객의 경험도 사실상 거기서 끝난다.그런데 공연이 끝난 뒤 돌아갈 필요가 없다면 어떨까. 공연장에서 몇 걸음 떨어진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는 숲길을 걷고, 그 지역 음식을 맛보고,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말이다.이때 공연은 더 이상 한두 시간짜리 관람 상품에 머물지 않는다. 여행의 목적이 되고, 머물 이유가 되고, 지역을 경험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숙박과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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