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을 바꿨다.
그동안 나는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혈액을 채취한 뒤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일주일이 넘게 기다려야 했고, 예약한 날짜에 병원을 찾으면 한 시간 이상 대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렇게 긴 시간을 들인 끝에 의사에게 내 상태를 듣는 시간은 고작 1분 남짓. 왠지 시간과 노력에 비해 허전함이 남곤 했다.
그래서 오늘은 과감하게 동네 의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침 내가 가끔 찾던 의원의 원장님이 대사내분비내과 전문의였고, 그것도 내가 앓고 있는 당뇨를 전문으로 진료하는 우리 지역에서는 유일한 분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익숙한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발걸음이 낯설게 가벼웠다.
그해 여름의 진단
나는 2023년 여름의 끝자락에 당뇨 판정을 받았다.
그 무렵 유난히 피곤했고 몸은 자꾸 부었다. 얼굴빛도 눈에 띄게 검어졌다. 거울 속의 나는 어딘가 낯선 사람 같았다. 가족들은 하나같이 검사를 받아보라고 등을 떠밀었고, 결국 나는 마지못해 집 근처 내과의 문을 열었다.
검사 결과를 본 의사 선생님의 표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짧은 침묵, 그리고 조심스럽게 종이를 내려놓던 손끝.
혈당은 300에 가까웠고, 당화혈색소는 11.9.
선생님은 곧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진료실을 나서는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그날 대학병원에서 처음 들은 말은 지금도 귀에 선하다.
“지금 이 상태는 언제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 한마디는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사람은 어떤 문장 앞에서 순식간에 늙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조용한 반란
그날 이후 나는 식사를 바꾸었다. 흰쌀 대신 잡곡을, 국물 대신 물을, 야식 대신 잠을 택했다. 운동도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파트 단지 한 바퀴, 다음에는 두 바퀴, 그리고 어느새 강변까지. 생활습관을 하나씩 고쳐 나갔다. 완벽하지는 않았다. 어떤 날은 무너졌고, 어떤 날은 다시 일어섰다. 다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4개월 전부터 약을 끊었다. 미국에서 진료하는 지인이 현재 수치라면 미국 기준으로는 약을 먹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그 말이 반가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약봉지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되찾은 듯한 기분.
하지만 최근 들어 이상한 변화가 찾아왔다.
몸이 쉽게 피곤해지고, 이유 없이 지치는 날이 많아졌다. 계단 몇 개에도 숨이 찼고, 오후만 되면 온몸이 무거워졌다. 문득 2022년 여름의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익숙한 두려움이 어깨 위에 슬며시 손을 얹는 것 같았다.
결국 병원을 찾았다.
두 개의 표정
새로운 주치의는 내가 4개월 동안 약을 먹지 않은 기록을 보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러면 안 된다고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여러 사례를 들어가며 당뇨는 증상이 없어도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병이라는 것을 자세히 알려주셨다. 대학병원의 1분과는 다른 시간, 다른 온도의 진료였다.
그리고 채혈을 했다.
두 시간 뒤 결과를 확인한 선생님의 표정은 조금 전과는 전혀 달랐다.
“당화혈색소가 6.6이네요?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죠?”
결과지를 다시 한번 바라보던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약을 원하지 않으시면 처방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3년 반 동안 지고 온 무엇인가가 어깨에서 스르륵 미끄러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2022년 여름이 떠올랐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을 들었던 그날의 공포는 아직도 내 안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께 약을 처방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두려움이 아니라, 존중이었다. 다시는 그해 여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아주 작은 다짐이기도 했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 최소 용량만 처방해 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다음 달에는 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납시다.”
숫자 사이에 놓인 시간
병원을 나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22년의 나는 죽음을 경고받았다.
2026년의 나는 희망을 약속받았다.
같은 병이었지만 내 삶은 그 사이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당화혈색소 11.9에서 6.6까지.
그 숫자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기적이 아니었다. 수없이 반복된 식사의 선택이었고, 귀찮아도 걸었던 걸음이었으며, 포기하지 않고 버텨낸 평범한 하루하루의 결과였다. 누구도 박수 쳐 주지 않는 새벽의 산책, 케이크 앞에서 한 번 더 삼켰던 침, 라면 국물을 반쯤 남기던 저녁 — 그 사소한 결정들이 조용히 쌓여 지금의 숫자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인생도 음악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향곡은 마지막 피날레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첫 음을 내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다. 그리고 그 첫 음은 특별한 기교보다도 끝까지 이어 갈 꾸준한 호흡을 요구한다.
건강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의 몸은 하루의 결과가 아니라 수많은 '오늘’이 쌓여 만들어진 악보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에게 음표를 건넸고, 오늘의 나는 다시 내일의 나에게 그 음표를 넘길 것이다.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삶의 악보에도 오늘 또 하나의 음표를 조용히 적어 넣는다.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 이어질 작은 프렐류드를.
🎼 오늘의 음악
바흐 – 첼로 모음곡 제1번 사장조 BWV 1007, 프렐류드
Cello Suite No. 1 in G major, BWV 1007: Prelude
이 곡에는 화려한 승리도 극적인 반전도 없다. 다만 한 음 한 음이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첼로의 활은 서두르지 않는다. 오르내리는 아르페지오는 마치 성실한 발걸음 같고, 낮은 현의 울림은 오랜 결심처럼 든든하다.
건강도 그렇다. 기적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낸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다. 11.9라는 절망도, 6.6이라는 안도도, 결국은 매일의 작은 음표들이 그려 낸 선율이었다.
바흐의 프렐류드는 오늘도 내게 조용히 말한다.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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