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경의중앙선 열차를 탔다.
지하 깊은 터널을 달리는 지하철이 아니라 창밖 풍경을 품고 달리는 열차라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그 사이에 무엇을 바라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경의중앙선은 한강을 곁에 두고 달린다. 그래서인지 서울의 풍경이 숨김없이 펼쳐진다. 유리로 빛나는 첨단의 고층빌딩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그 아래에는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오래된 주택과 구축 건물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로 다른 시대가 한 화면 안에 담겨 있지만 어색하지 않다. 새로운 것이 옛것을 밀어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이 한 도시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열차는 한강을 스쳐 지나간다. 넓은 강물은 말없이 흐르고, 강변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은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인다. 물결도 흐르고, 자동차도 흐른다. 하나는 자연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만든 시간이지만 이상하리만큼 잘 어우러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오케스트라가 떠올랐다.
현악기는 자신의 선율을 연주하고, 목관과 금관은 또 다른 음색을 더한다. 타악기는 음악의 맥박을 만들어 낸다. 모두 다른 소리를 내지만, 지향하는 방향은 하나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건물과 새로운 빌딩, 강물과 자동차, 철길과 사람들…. 저마다 다른 리듬으로 살아가지만 결국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을 만들어 간다.
우리는 늘 목적지에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간다. 몇 분을 아끼려 환승 경로를 계산하고, 도착 시간을 초 단위로 확인하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오늘처럼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길에서는 속도가 아니라 풍경이 말을 건넨다. 지하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하늘의 표정과 흘러가는 구름, 세월을 품은 지붕과 유리로 빛나는 빌딩, 그리고 묵묵히 흐르는 한강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앞만 보고 달릴 때는 성공과 실패만 보인다. 가끔은 창밖을 바라보듯 삶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나온 시간도, 지금의 시간도, 앞으로 흘러갈 시간도 모두 하나의 풍경이 되어 우리의 삶을 완성한다. 오래된 기억도 새로운 도전도 서로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도시를 함께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이 저마다의 악기로 소리를 내며, 결국 한 사람의 생애라는 교향곡을 완성해 간다.
오늘 경의중앙선은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준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잊고 지냈던 풍경을 다시 보여주었고, 속도보다 시선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때로는 가장 좋은 여행이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길을 조금 천천히 바라보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배우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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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음악
안토닌 드보르자크(Antonín Dvořák)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 제2악장 Largo
드보르자크는 새로운 대륙에서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음악을 썼지만, 그 선율 속에는 오히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음악은 여행의 설렘과 삶을 돌아보는 사색을 동시에 품고 있다.
오늘 경의중앙선 창밖으로 스쳐 지나간 한강과 도시의 풍경도 그랬다. 익숙한 서울이었지만, 천천히 바라보니 마치 처음 만나는 새로운 세상처럼 다가왔다.
드보르자크의 Largo를 들으며 오늘의 풍경을 다시 떠올려본다.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도 잠시 창밖을 바라볼 여유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하루는 조금 더 깊은 선율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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