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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

세기말의 반항아 에릭 사티

by 정마에Zeongmae 2023.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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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검정 벨벳 양복, 검은 우산, 검은 모자 차림으로 몽마르뜨르 언덕을 거닐며 동네 아이들에게 ‘가난뱅이 아저씨’라고 놀림 받았던 에릭 사티(1866-1925). 그는 ‘음악가’라는 명칭 대신에 ‘소리를 섬세하게 측정하는 기술자, 음파 측정가’라고 불리기를 원했습니다.

사티는 6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아버지는 곧 피아노 교사인 계모와 재혼합니다. 계모의 강압적인 음악교육과 파리음악원 선생님들로부터 ‘음악원에서 제일 게으르고 형편없는 실력을 가진 학생’이라는 평을 듣고 음악에 흥미를 잃고 군대에 입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몇 달 후 고의적으로 옮은 기관지염으로 제대하게 되죠.

에릭 사티는 세기말의 반항아로 살다 간 괴짜였습니다.

그는 낭만주의나 인상주의에 반대하여 감정의 표출을 절제한 채 단순하면서도 기발한 음악들을 작곡했습니다.

괴팍한 아이디어와 신랄한 유머, 그리고 신비주의와 순수에 대한 이념을 포함하고 있는 자신의 독창적인 음악세계에 빠져 지냈습니다.

파리음악원을 마친 후 1884년부터 피아노곡을 중심으로 작곡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1890년부터는 몽마르트르에서 살며 검은 고양이(Le chat noir)라는 카바레의 피아니스트로 취직하여 당시 유행하던 음악들을 그만의 스타일대로 편곡, 연주하게 됩니다. 카바레 검은 고양이는 작가, 배우, 작곡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철학을 이야기하고, 자신만의 예술을 마음껏 선보일 수 있는 장소였죠. 여기서 사티 특유의 ‘가구 음악’ 스타일이 탄생합니다.

이 시기에 드뷔시와 친하게 지냈고, 신비주의적 비밀결사인 '장미십자교단'의 전속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장미십자교단의 종소리」와 같은 작품을 썼습니다.

그는 또 '지휘자 예수의 예술 메트로폴리탄 교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유일한 교인이 되었습니다.

1917년에 콕토의 대본과 피카소의 무대장치에 의한 발레음악 「파라드 Parade」의 음악을 맡으면서 예술성을 제대로 인정받았습니다.

 

말년의 사티는 당시 카바레에서 연주했던 곡들이 자신의 원래 천성과는 어긋나는 것들이었다며 저급한 음악 취급했지만 그 중 한 곡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있는 난 너를 원해(Je te veux)입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시대를 초월한 대담한 수법과 혁신적인 사티의 사상은 초현실주의의 선구적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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