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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서양음악사

15세기 플랑드르의 음악 1

by 정마에Zeongmae 2020.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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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작곡가들이 15세기의 중반을 지나서도 그들의 창조적 활동을 활발히 했지만, 15세기 후반에는 플랑드르 악파가 선도적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의 음악적 기법은 전 유럽에 퍼졌고, 후에 16세기 음악을 지배하는 양식을 확립했다

 

▲ 15세기 샹송집: 오케겜, 죠스갱 등 플랑드르 악파의 샹송 모음집


당시의 음악의 일반적인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4성부 작품 형태가 15세기 중엽부터 한층 유행했다. 그때까지 최저 성부였던 테너 성부에 그보다 더 낮은 성부가 부가되었다. 이에 따라서 각 성부의 인습적인 명칭은 위로부터 아래로 칸투스(cantus) 혹은 수페리우스(superius), 알투스(altus), 테노르(tenor), 바수스(bassus)라고 했다.
2) 성부 간에는 한층 더 양식상의 동등성이 있었고, 균형을 이룬 다성 음악이 창조되었다.
3) 모방법은 이전보다 더욱 괄목할 만한 역할을 했다.
4) 카논의 새로운 양식들이 만들어졌다.
5) 포부르동과 란디니 카덴스가 사라졌다.
6) 서로 교체되는 악절에서 성부들이 짝을 이루는 방법을 2중창 양식(duet style)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7) 한쪽에서는 화성적 양식의 악절과 또 다른 쪽에서는 리듬적으로 다양한 대위법에 의한 악절을 교차시키면서 사용하는 방법이 전형적인 형태였다.
8) 정격종지(V - I)와 변격종지(IV - I)가 선법적인 마침꼴보다 더 일반화되었다.
9) 일반적으로 15세기 후기와 16세기 초의 작곡가들은 무지카 레제르바타(musica reservata; 예비된 음악)라는 한층 더 표현이 풍부한 양식을 창시하였다.

※ 함께 들을 음악은 플랑드르 악파의 주요 작곡가 중 한 사람인 앙투안 뷔누아(Antoine Busnois, 1430 경 ~1492 경)의 작품이다.

 


※ 플랑드르는 현재의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네덜란드에 걸쳐 존재했던 백국의 영역을 의미한다. 단 백작이 통치하는 백국임에도 불구하고 도시들의 권력이 더 강했다. 뜻은 '낮은 땅'.

 

▲ 1500년 경 서유럽

 

8세기부터 프랑크 왕국의 무한확장트리에 영토로 편입되었고, 862년 백작령이 되었다. 이후 루도비코스 왕 사후 사분오열되던 프랑크 왕국에서 이탈하여 독자적 세력권을 형성하였다. 봉건제도로 통치되며 백작에게 통치되면서도 작센, 프리지아, 프랑크, 갈리아 계통이 어지럽게 섞여 통일적인 특징을 잡아내기 힘들었다. 단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일찌기 법치에 대한 개념을 확립하고 봉건제도에 여러가지로 합치되지 않는 개념인 코뮌을 형성하였다.

전통적으로 이웃에 있는 강력한 공국인 부르고뉴와 프랑스의 영향력을 받았으며, 과거에는 농업을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곧 길드들이 통치하는 각 도시령들이 느슨한 연맹체 비슷한 것을 구성함과 동시에 상업 쪽으로 갈아타게 된다. 위치상 이곳은 영국, 라인란트, 남쪽으로는 파리, 부르고뉴, 북유럽의 많은 나라들을 연계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으며, 한자동맹과 경쟁하면서 경제적 풍요를 바탕으로 예술과 학문이 발달하였다.

15세기 초에는 부르고뉴 공국과 정략결혼으로 합쳐지고, 그 이후 부르고뉴 공작의 외동딸 마리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막시밀리안 1세와 정략결혼 함으로써 부르고뉴와 함께 합스부르크령이 되었다.
역사의 변천을 따라 플랑드르 지방의 경역도 크게 변하여, 한때는 네덜란드의 남부에서 프랑스의 북동부 일대를 통틀어 지칭한 일도 있었다. 이 때의 면적은 1만㎢가 넘었다.

현재의 플랑드르는 벨기에의 영토로 벨기에어()로는 ‘블렌데렌(Vleanderen)’, 영어로는 ‘플랜더스(Flanders)’라고 한다. 북해(北海) 연안의 저지대로 스헬데(에스코)강(江)이 동쪽 경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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