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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506

고별 하이든의 교향곡 제45번은 일명 《고별 Farewell》이라고 불립니다. 마지막 악장이 시작되면 연주자들은 처음에는 콘트라베이스, 그 다음엔 오보에, 호른 순으로 차례로 무대에서 퇴장합니다. 결국 맨 마지막에는 바이올린 두 대만 남아 연주를 마치고 보면대 옆에 켜두었던 촛불을 끕니다. 작곡가의 의도를 알아 챈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그 다음날 전체 단원에게 휴가를 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옵니다. 2022. 10. 11.
헨델의 변명 위대한 작곡가 헨델은 당시의 다른 많은 대가들처럼 다른 음악가의 작품을 표절하는 데 있어 결코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온갖 작곡가들로부터 음악을 가져왔다는 것이 증명되어, 사람들이 표절에 대해 비난하자 "하지만 그 멍청이들은 그런 좋은 멜로디를 생각해 냈으면서,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를 도무지 모르더라고!" 라고 태연히 응수했습니다. 또 한번은, "곡이 너무 좋아서 그 따위 녀석의 이름을 붙이기가 아깝더라고. 그래서 내 이름을 붙였을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없어. 신에게 맹세하지!!" 라고도 했죠. 그럼 어떤 작품들에 표절이 있었는지 볼까요. ‘라르고’로 잘 알려진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 중 ‘옴 브라 마이푸’는 조반니 보논치니의 동명 오페라를 그대로 베낀 것입니다. 헨델은 자신의 도둑질을 일부.. 2022. 9. 26.
이탈리아를 사랑한 작곡가들 유럽 문화의 뿌리는 그리스 로마 문화입니다. 따라서 많은 귀족의 자제들과 예술가들이 음악과 미술, 건축의 고향 이탈리아로 여행을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괴테의 자전적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이탈리아를 그리워하는 아름다운 시(詩)가 있는데, 이 시의 가사 "레몬 꽃이 피는 나라를 아세요?"는 토마의 오페라 「미뇽」에 인용되어 여주인공이 노래를 부릅니다. 바그너는 자주 여행을 다니던 이탈리아의 휴양지들에서 주요 작품들을 작곡했고, 베네치아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브람스 역시 이탈리아를 수차례 여행했는데, 특히 베네치아를 좋아했습니다. 멘델스존은 이탈리아를 여행한 후 그 인상을 교향곡 제4번 '이탈리아'에 담았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탈리아 기상곡」과 「플로렌스의 추억」.. 2022. 9. 6.
하이든과 모차르트 하이든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스승이었습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처음 만난 것은 1781년 고트프리트 판 슈비텐(Gottfried van Swieten, 1799~1803) 남작의 주선으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음악을 듣기 위한 자리에서였습니다. 모차르트는 처음부터 하이든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으며, 하이든 역시 일찍이 성공한 젊은 작곡가의 재능을 인정하고 스무 살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모차르트는 하이든의 충고와 비판을 언제나 겸허하게 받아들였으며, 하이든의 의견을 그 누구의 말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모차르트는 1781년부터 1785년에 걸쳐 작곡한 6개의 현악 사중주를 하이든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으로 「하이든 사중주」라는 제목으로 출판했습니다. 두 사람의 나.. 2022. 9. 1.
음악가의 사회적 지위 고전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독일의 본에서 태어났습니다. 고전주의 시대에서 초기 낭만주의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 사이에서 56년의 생을 보낸 베토벤은 고전파 음악 양식을 최정상까지 높이는 동시에 19세기 음악가들의 우상적 존재가 되었으며 후세에 많은 영향을 끼친 작곡가입니다. 베토벤의 할아버지 루이스(Louis van Beethoven, 1714~1773)는 플랑드르에서 이주해 온 본 궁정의 악장이었고, 아버지 요한(Johann van Beethoven, 1740~1792)은 본의 궁정 가수(테너)였으며, 어머니 막달레나는 궁정 요리장의 딸이었습니다. 1770년 12월, 베토벤이 본에서 태어났을 때는 이미 신동 모차르트(1756~1.. 2022. 8. 31.
바그너, 로시니의 악보로 베토벤을 지휘하다. 1855년 바그너는 런던에서 런던필과 함께 8회의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이 연주회의 첫 회에 바그너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암보로 지휘했죠. 그런데, 다음 날 런던의 신문에 바그너의 지휘를 혹평하는 평론이 실렸습니다. 평론의 요지는 '바그너가 암보로 지휘한 것은 불손하다' 였어요. 그러자 그 다음 공연에서 바그너는 보면데에 악보를 올려놓고 그것을 보고 지휘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런던의 평단도 연주를 호평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악보는 베토벤의 것이 아니였어요.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를 보면대에 놓고 아무렇게나 넘기면 지휘를 했던 거에요. 그것도 거꾸로 놓고!!! 2022.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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