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슈베르트15 순정의 가곡왕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IV 슈베르티아데에는 슈베르트보다 30살이 많은 포글이 있는가 하면 슈베르트보다 7살 어린 슈빈트 같은 소년도 있었다. 낭만적인 천재 화가였던 슈빈트와 서정적인 천재 작곡가 슈베르트와의 친교는 슈빈트가 17살 때부터 시작되었다. 크고 푸른 눈에 갸름하고 이지적인 얼굴의 슈빈트는 그 몸가짐도 여성적이어서 그룹의 멤버들은 그를 천사라고 불렀다. 그리고 슈베르트와의 동성애 같은 애정 때문에 '그의 애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유머를 던지며 쾌활하던 슈빈트가 조용할 때는 그림을 그릴 때였다. ▲ 모리츠 폰 슈빈트 그 위대한 가곡에 비하면 너무나도 이름없이 묻혀서 짧은 생애를 보낸 슈베르트가 다행스럽게도 음악사상의 어느 작곡가보다도 많은 초상화와 생활 풍경의 그림을 남긴 것은 오로지 슈빈트와 쿠펠비저를 위시한 수 명의.. 2018. 2. 26. 순정의 가곡왕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III 슈베르트보다 30살이나 연장자로 이미 빈 국립 오페라의 명 바리톤이었던 포글은 위풍당당한 체구에다 풍부한 성량과 능란한 연기로 인기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막간의 휴식 시간에는 그리스의 고전을 읽는 교양인이었다. 그는 쇼버의 열성적인 권유에 못 이겨서 작곡의 천재라는 무명 작곡가의 노래를 보려고 쇼버의 집까지 왔다. 위풍당당한 포글 앞에서 키가 작고 초라해 보이는 슈베르트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포글은 약간 무시하는 눈초리로 슈베르트를 내려다 보았다. ▲ 슈빈트가 그린 포글과 슈베르트 "어디, 좀 보지. 뭘 보여 주시려나? 반주는 직접 해 주시고." 그러면서 포글은 가까이에 있던 악보를 집어들고 허밍으로 흥얼거리며 선율을 흝어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다른 악보를 들고 이번에는 반주에 맞춰서 작은 목소.. 2018. 2. 6. 순정의 가곡왕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I 구차한 살림이었다. 거기다가 어린 자식들은 복작거렸다. 빈의 변두리 초등학교 교장의 수입으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 수입마저 국가에서 제정한 월급제가 아니고 학생들이 납부한 교육비의 일부를 가지고 교사의 생활비와 자신의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사립학교였다. 남편보다 일곱 살 위인 아내의 검소하고 야무진 살림살이가 아니고는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살림이었으나 부부간의 애정은 각별한 것이었다. 그들은 열네 명이나 자녀를 보았고 그 중에 살아 남은 자식이 다섯명, 네 째 아들이 프란츠 슈베르트였다. 프란츠의 할아버지는 시골 농부였고 그의 아버지(Franz Theodor) 역시 농사를 짓다가 임시 교원양성소를 나와 교사가 되었다. 어머니 역시 시골 열쇠장수의 딸이었다. 그러기에 자녀를 열네 명을 낳고.. 2018. 1. 16. 이전 1 2 3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