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슈베르트13 순정의 가곡왕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I 구차한 살림이었다. 거기다가 어린 자식들은 복작거렸다. 빈의 변두리 초등학교 교장의 수입으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 수입마저 국가에서 제정한 월급제가 아니고 학생들이 납부한 교육비의 일부를 가지고 교사의 생활비와 자신의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사립학교였다. 남편보다 일곱 살 위인 아내의 검소하고 야무진 살림살이가 아니고는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살림이었으나 부부간의 애정은 각별한 것이었다. 그들은 열네 명이나 자녀를 보았고 그 중에 살아 남은 자식이 다섯명, 네 째 아들이 프란츠 슈베르트였다. 프란츠의 할아버지는 시골 농부였고 그의 아버지(Franz Theodor) 역시 농사를 짓다가 임시 교원양성소를 나와 교사가 되었다. 어머니 역시 시골 열쇠장수의 딸이었다. 그러기에 자녀를 열네 명을 낳고.. 2018. 1. 16. 이전 1 2 3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