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보다 30살이나 연장자로 이미 빈 국립 오페라의 명 바리톤이었던 포글은 위풍당당한 체구에다 풍부한 성량과 능란한 연기로 인기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막간의 휴식 시간에는 그리스의 고전을 읽는 교양인이었다. 그는 쇼버의 열성적인 권유에 못 이겨서 작곡의 천재라는 무명 작곡가의 노래를 보려고 쇼버의 집까지 왔다.
위풍당당한 포글 앞에서 키가 작고 초라해 보이는 슈베르트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포글은 약간 무시하는 눈초리로 슈베르트를 내려다 보았다.
▲ 슈빈트가 그린 포글과 슈베르트
"어디, 좀 보지. 뭘 보여 주시려나? 반주는 직접 해 주시고."
그러면서 포글은 가까이에 있던 악보를 집어들고 허밍으로 흥얼거리며 선율을 흝어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다른 악보를 들고 이번에는 반주에 맞춰서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의 표정은 부드러워졌다. 그러고는 그는 다시 오겠다는 말도 없이 돌아가려다가 슈베르트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당신은 확실히 무엇을 가지고 있느데 너무 고지식해서 그 아름다운 악상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낭비하는 것 같아요."
포글은 이때 슈베르트의 가곡에 강렬한 인상을 받아 그 뒤로 자주 찾아오게 되었고 떨어질 수 없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오페라 무대에서 은퇴한 포글은 슈베르트의 가곡으로 인해 후세에까지 리트 가수로서 그 이름을 남기는 가수가 되었고, 슈베르트의 가곡은 포글의 뛰어난 표현으로 인해 청중을 사로잡아 세상에 빠르게 퍼졌다.
▲ 포글
사실 슈베르트의 이름을 만고에 빛내는 「마왕」을 위시하여,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레방앗간의 처녀」, 「겨울 나그네」, 「백조의 노래」 등은 모두가 포글의 성역에 맞도록 작곡한 것이었다. 그리고 국외에는 나가보지 못하고 일생을 마친 슈베르트가 5-6개월의 긴 국내 여행을 한 것도 포글의 덕분이었다. 그것은 집 없고 돈 없는 슈베르트로서는 가장 즐거운 순간이었고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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