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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츠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I세(Johann Strauß I, 1804~1849)는 숙박업을 하는 부모에에
서 태어났고, 7세 때 어머니를 여의였습니다. 슈트라우스의 계모는 그를 제본소의 도제로 보냈는데, 그는 제본을 착실히 배우면서 틈틈이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배웠습니다. 1822년 제본 마이스터가 되었으나 1824년부터 왈츠 작곡가 란너(Josef Lanner, 1801~1843)가 결성한 4중주단네서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의 길을 가고자 결심했습니다.
1825년 21세가 된 슈트라우스는 마리아 안나 슈트라임(Maria Anna Streim)과 결혼하여 첫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 II세를 나았고,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고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I세는 1835년 궁정 무도회의 지휘자로 취임하는 등 빈의 대중음악을 지배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인기를 모았지만, 1849년 45세의 나이에 어른들은 좀처럼 걸리지 않는 성홍열에 걸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빈에 태어나고 빈에서 죽은 순수한 빈 사람이었습니다. 베를리오즈는 요한 슈트라우스 I세를 '빈 왈츠의 아버지'라고 불렀으며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1
"슈트라우스가 없는 빈은 도나우 강이 없는 오스트리아와 같다."
요한 슈트라우스 I세는 빈 스타일의 왈츠 연주양식을 개척하였으며, 폴카나 카드릴도 빈 스타일의 세련된 감각이 있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안넨 폴카>, <라데츠키 행진곡> 등 외에 많은 춤곡을 작곡하였습니다. 작품번호가 붙은 것으로 왈츠 149곡, 갤럽 29곡, 폴카 14곡, 카드리유 34곡, 코티용(cotillon), 행진곡 등 수십 곡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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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이 학교에서 옮아 온 후 옮아서 그랬다고 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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