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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41

서양 음악의 아버지, 바흐 III 1717년 11월 바흐는 쾨텐의 레오폴드 공에게 초빙되어 다시 바이마르를 떠나 쾨텐의 궁정 악장이 되었는데, 쾨텐 궁정의 오케스트라는 아직까지 그가 대해 본 적이 없는 우수한 악단이었습니다. 바흐의 많은 기악곡과 합주곡은 대부분 이곳에서 우수한 오케스트라 덕분에 쓸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많은 실내악도 여기서 작곡되었으며, 유명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도 이곳에서 만들어졌으며,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1권》도 착수되었습니다. 젊은 영주 레오폴드 공은 음악 마니아로 여행할 때도 반드시 바흐와 함께 했습니다. 1720년 5월부터 7월까지 바흐는 레오폴드 공과 보헤미어의 휴양지 칼스바트에 여행을 하였는데, 두 달만에 돌아온 바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비탄에 쌓인 4명의 자식들뿐이었습니다. 아내인 바르바르가 .. 2020. 11. 22.
서양 음악의 아버지, 바흐 II 아른슈타트에서의 바흐는 그야말로 다감한 청춘을 보낸 것 같습니다. 악평이 나있는 성가대원 가이어스바흐와의 격투나, 여인의 출입을 금하는 교회 성가대석에 낯선 여인을 입장시킨 것 등 화제가 적지 않았습니다. 1705년 말 바흐는 뤼벡에서 오르간의 대가인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 ~ 1707)가 연주회를 연다는 이야기를 듣고 1개월의 휴가를 얻어 도보로 80Km를 걸어 배우기도 하고 연주회를 감상했다고 합니다. 꿈과 같은 뤼벡에서의 4개월은 바흐에게 있어서 커다란 수확이었으나 휴가를 3개월이나 넘긴 그는 직무태만으로 교회에서 질책을 당해야 했습니다. 또한 합창 반주를 아무렇게나 했다고 비난을 받은 바도 있었습니다. 북스테후데의 호방한 작풍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는 유명한 《토카.. 2020. 11. 15.
서양음악의 아버지, 바흐 I '서양음악의 아버지'라 불려지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는 약 2백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숱한 음악가를 배출한 독일 튀링겐 지방 아이제나흐의 바흐 가문에서 1685년 3월 21일에 태어났습니다. 바흐 가문은 본래 헝가리 프레스부르크에서 제분소를 경영하던 파이트 바흐로부터 시작됩니다만, 16세기 말엽 파이트 바흐는 신교도로서 가톨릭의 심한 박해를 피해 튀링겐 지방으로 이주해 왔던 것입니다. 제바스티안 바흐는 지금까지의 그 가문의 풍습에 따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웠으나 9살 때 어머니를 잃고, 10살 때에 아버지 마저 여의게 됩니다. 의지할 부보를 모두 잃은 어린 바흐는 오르트루프에 살고 있는 형인 오르가니스트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Johan.. 2020. 11. 8.
일생에 단 한번 우는 새 일생에 단 한번 우는 전설의 새가 있다. 그 울음소리는 이 세상의 어떤 소리보다 아름다운 것이다. 둥지를 떠나는 그 순간부터 그 새는 가시나무를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가장 길고 날카로운 가시를 찾으면 몸을 날린다. 죽어 가는 새는 그 고통을 초월하면서 이윽고 종달새나 나이팅게일도 따를 수 없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와 목숨을 맞바꾸는 것이다. 그리하여 온 세상은 침묵 속에서 귀를 기울이고 신께서도 미소를 짖는다. 그 이유는 가장 훌륭한 것은 위대한 고통을 치러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오스트리아 여류작가 콜린 맥컬로우가 쓴 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독자는 가시나무 새는 왜? 제일 길고 날카로운 가시를 찾아 헤맬까 의문을 갖는다. 이 의문에 대해서 맥컬리우는 "그.. 2020. 3. 26.
토카타와 푸가 d단조, BWV 565《Toccata und Fuge d-moll, BWV 565》 이 작품은 바흐의 수많은 오르간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곡으로, 타우지히(Karl Tausig, 1841~1871)의 피아노 편곡이나 스토코프스키의 관현악곡에 의해서도 널리 친근해져 있다. 작곡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아른시타트 시대 (1703~1707) 후기의 작품이라고 보는 측과 바이마르 시대 (1708~1717) 초기로 보는 측의 두 가지 설이 있다. 1705년에 바후가 친히 접한 북부 독일 오르간 악파의 대가 북스테후데 (Dietrich Buxtehude, 1637~1707)의 영향이 강하나, 일견 자유 분방하다고도 할 수 있는 격렬한 감정의 기복이나, 형식에 구애됨이 없는 자유로운 구성에서 청년 바흐의 힘과 억센 개성이 잘 나타나 있다. 곡은 4/4박자의 강렬한 하행음.. 2019. 10. 17.
바흐 “8개의 전주곡과 푸가” 1703년에 바흐는 약 반년 동안 바이마르의 요한 에른스트 공의 궁정에서 했는데, 아른슈타트 새교회(Neue Kirche, Arnstadt)의 새로 만든 오르간 연주 경연에서 훌륭한 솜씨를 보여 8월 9일에 18세의 젊은 나이로 그 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아른슈타트에서의 바흐는 그야말로 다감한 청춘을 체험한 것 같다. 악평이 나있는 성가대원 가이어스바흐와의 격투나, 여인의 출입을 금하는 교회 성가대석에 '낯선 여인'을 입장시킨 것 등 화제가 적지 않다. 디트리히 북스테후데 (Dietrich Buxtehide, 1637~1707)의 예술을 접하기 위하여 계획한 뤼벡 여행도 4주간이었던 예정을 그 4배로 연장하여 당국의 질책을 받았다. 또한, 오랫만에 돌아온 바흐의 연주는 긴 즉흥이나 참신한 조바꿈을 .. 2019.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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