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트벵글러나 토스카니니 시대의 지휘자들은 물론 많은 곡을 지휘했지만 오늘날의 수준에서 보면 그런 식으로 모든 곡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음악이란 시간 예술이고 그만큼 배우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므로 그것을 단축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2차 대전 후 세대처럼 지휘를 기호로 처리해 버리면 연주는 가능하겠지만 음악의 내용은 빈약해진다.
훌륭한 지휘자에게는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곡이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 시간을 들여 자신의 레퍼토리로 만든 곡을 든다. 요즘 들어 음악적 성숙을 위한 수련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무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떠한 양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사람이 그 이상의 것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기는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그만큼 각각의 양식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50여 년 전이라면 「봄의 제전」을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하는 천재도 있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낭만파에 정통한 대지휘자가 모차르트에도 뛰어난 경우는 드물다. 거꾸로 고음악 지휘자가 말러를 지휘하는 일도 거의 없다. 설사 지휘를 한다 하더라도 훌륭한 연주가 되기는 힘들다. 푸르트벵글러나 멩겔베르크의 시대는 시대 양식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고,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바그너의 악극처럼 지휘해도 뭐라 할 사 람이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청중들이 음악 양식을 잘 파악하고 있어서 그런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은 역시 녹음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연주자나 지휘자가 모두 그리 많은 곡을 알지는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로 곡의 해석을 끌고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녹음을 통하여 그런 곡들의 표준적 연주 형식을 어느 정도는 구체적인 음의 형태로 떠올릴 수가 있게 되었다. 어느 곡이든 자신의 취향에 맞게 악보를 고쳐서 연주했다는 스토코프스키 당시에도 그것이 어느 정도 원곡과 차이가 나는지는 판단할 수 있었을 테지만 다양한 형태로 음악을 접하는 현대인들이 당연히 좀 더 객관적으로 음악을 듣고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23.06.29 -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 문화의 공통 언어를 잃어버린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2
'Music Story >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케스트라가 중시해야 하는 것 (1) | 2023.08.05 |
---|---|
마리스 얀손스 (6) | 2023.07.23 |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관계 (0) | 2023.07.04 |
문화의 공통 언어를 잃어버린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2 (0) | 2023.06.29 |
문화의 공통 언어를 잃어버린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1 (4) | 2023.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