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는 원래 연주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되는 것이었다. 번스타인이나 체리비다케처럼 지휘법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젊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 그들 나름의 기쁨이 되기 때문이지 남에게 부탁을 받아서 하는 일은 아니었다.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해도 누군가에게 어느 곡의 지휘는 이렇게 하라는 식의 가르침을 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현역 지휘자들은 남을 가르칠 만한 여유 또한 없으므로 제각기 자신들이 존경하는 지휘자들의 연주 현장을 보고 그 스타일을 익히는 것이다. 푸르트벵글러가 니키쉬의 지휘를 보기 위해 그의 연주회장을 좇아 다녔다거나 바이로이트에서 연주하는 토스타니니를 보기 위해 카랴얀이 그곳으로 찾아갔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음악 세계에서 이러한 공통 언어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지휘법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까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는 박자 구분 정도면 충분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변박자가 사용되면서부터는 오케스트라 쪽에서도 자신이 지금 어디를 연주하고 있고, 어떻게 해나가면 좋은가 하는 것을 전체의 움직임 속에서 파악해 내기가 몹시 힘들어졌다. 그럴 때 지휘봉이 지금은 어느 곳을 연주하고 있다는 것을 모여 준다면 곡의 전체를 파악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자신이 연주할 부분에 대해서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다라서 지휘자는 박자를 정학하게 짚어서 지휘해 줄 필요가 있었고, 지휘자들에게 단순한 박자 구분 이상의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해졌다. 특히 2차 대전 이후 콩쿠르를 실시하게 되면서부터는 변박자를 제대로 지휘하지 못하면 지휘자 대열에도 끼지 못하는 풍조가 만연했고, 그러한 능력들이 지휘자에게 우선적으로 요구되었다.
이런 일련의 변화들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관계를 크게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뛰어난 지휘자와 훌륭한 오케스트라 사이에는 어느 마디의 몇 째 박자 따위의 수준은 뛰어넘는 합리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물론 참다운 합리성에 이르기까지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능력이 전재됨과 동시에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이해할 시간이 필요하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처음 얼굴을 맞대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서로의 개성을 표현으로 이끌어 낼 시간이 더욱 많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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