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오늘날에는 과게에 비해 훨씬 많은 오케스트라들이 존재하며, 또 그만큼의 지휘자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지휘자란 예나 지금이나 그리 쉽게 찾을 수는 없다. 따라서 오케스트라가 지휘자를 선임할 때는 그 지휘자의 유명도난 출반된 음반, 그리고 대략의 레퍼토리와 연주 경향을 파악하여 지휘를 맞기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의 지휘로 연주해 보기 전까지는 그 지휘자의 능력이나 취향을 전혀 알 수 없다. 다행히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잘 맞으면 그 둘은 좋은 짝이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지휘자는 원래 어떤 어떤 조건을 가진 사람을 특별히 내세운 것이 아니라, 서로의 능력을 판단하기 쉬운 집단 속에서 어떤 사람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받게 되면 그가 지휘자로 선정되었다. 지역이나 집단마다 사고방식이나 나름의 독창성이 있기 때문에 그 집단에서 선택된 지휘자는 그 집단 안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어울리는 사람인 것이다.
지휘자를 선택하는 데 콩쿠르가 유행하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선발 양식은 존재했지만 그것은 일종의 오디션 같은 것이었다. 오늘날처럼 유명한 지휘자를 다른 곳에서 초빙해 오는 방식이 되면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문화적 공통 언어는 성립할 수 없게 되었다.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오기 이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다. 이스라엘 필하모니처럼 세계 여러 곳의 연주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오케스트라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는 그 국가나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이 된다. 따라서 지역성이 저절로 나타나게 되고 외부에서 초청되어 온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이루려면, 도는 오케스트라를 지휘자의 개성대로 이끌려면 서로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예외적인 경우로는 임시 편성의 독일 바이로이트음악제를 맨 처음 지휘했던 프랑스계 지휘자 클뤼탕스가 있다. 1955년 그의 지휘 이전에는 거의 독일계 지휘자들의 지휘로 음악제를 이끌고 있었다. 클뤼탕스는 독일 음악에도 상당히 정통해 있었기 때문에 무리 없이 독일 음악제를 지휘해 낼 수 있었다. 1966년 블레즈 이후에는 이런 사례가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오케스트라에는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거진 지휘자가 들고나고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오케스트라 자체의 지역적 특성이 유지된다. 예를 들어 같은 독일 오케스트라라고 하더라도 빈, 베를린, 드레스덴은 각자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지휘자가 지휘를 하더라도 각각의 독특함을 완전히 잃지 않는다.
사실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연주할 때는 악보를 보고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보다 음악이 청중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무엇을 느끼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다라서 한 곡을 다른 지휘자와 연주하더라도 오케스트라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신고전주의 지휘자들은 악보를 만국 공통어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휘법이라는 분야가 독립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것은 같은 곡이라면 같은 것을 전달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또한 2차 대전 이전에는 어떤 의미에서 지휘자에게 천재적 재능이 필요했지만 전후에는 그렇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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