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럽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에 애국주의와 민족주의가 대두되었으며, 특히 나폴레옹의 정복전쟁은 각 민족과 국민에게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결과를 낳게 되어 민족중심의 근대국가 성립에 영향을 끼쳤다. 이에 따라서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이 유럽에서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었으며, 19세기 초부터 민족음악에 대한 관심도 새롭게 부각되었다.
19세기 초에는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낭만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다른 나라의 전설을 소재로 하거나 민요와 무곡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많은 작곡가들이 이국취향의 요소를 작곡의 새로운 요소로 활용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지만, 서구적인 양식 위에 민속적 색채를 도입하는 것에 그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이국 취향의 요소를 활용하여 작곡하는데 그 소재로써 널리 사용된 것 중 하나가 스페인의 민속음악이다.
스페인의 민속음악은 그 종류의 다양함과 독특함으로 인해 많은 프랑스 근대 작곡가들이 스페인의 음악요소를 작품에 반영하였는데, 특히 동양적 음계, 무곡의 독특한 리듬 등이 좋은 소재가 되었다.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오페라 <카르멘-Carmen>(1875), 랄로(Eduard Lalo, 1823-1892)의 <스페인교향곡-Symphonie Espagnole>(1875), 샤브리에(Emmanuel Chabrier, 1841-1894)의 랩소디 <스페인-Espagna>(1883) 같은 작품들은 스페인 음악의 우수성을 찾아내어 스페인 민속음악의 요소를 새로운 창작의 소재로 채택하여 개발시킨 중요한 작품들이다.
특히 이들 중에서도 랄로는 스페인 민속음악을 그의 작품들에 소재로 사용하여 프랑스 작품에 접목시킨 중요한 작곡가이다. 현악기를 위한 곡과 오페라를 주로 작곡한 작곡가로, 동시대의 다른 프랑스 작곡가들에 비하여 그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의 관현악법은 후에 드뷔시(Claud Debussy, 1862-1918)와 댕디(Vincent d'Indy, 1851-1931)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 교향곡>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스페인 민속음악을 접목시킨 랄로의 대표적인 곡이다. 랄로는 이 곡 외에 그의 유일한 첼로 곡인 <첼로 협주곡-Cello Concerto>에도 스페인 음악의 요소를 반영하였다. 그의 이러한 스페인 편중의 취향은 그가 스페인 혈통이라는 것과 당시의 이국 취향에 맞물려져 나타나게 되었다.
<스페인 교향곡>은 5악장으로 구성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형식면에서 교향곡이라는 이름이 붙여질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매우 화려한 독주 바이올린의 선율과 대담하고 특이한 리듬을 가지고 있다.
변형된 하바네라 리듬에 의한 진행의 1악장은 서주가 포함된 소나타 형식으로 서주부에서는 독주와 반주부에 의해 제 1, 2주제가 제시되며, 독주가 서주부를 관현악 반주와 함께 연주하는 접에서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소나타 형식의 틀을 가지고는 있으나 대비되는 2개의 주제에 의한 제시부와 전개부 그리고 재현부 등 소나타 형식구성의 요소가 완벽하게 형성되어 있지는 않다.
2악장은 볼레로 리듬과 유사한 셋잇단음 리듬에 의한 익살스러운 분위기의 스페인 춤곡의 진행을 가지며, 기교적인 독주의 선율이 돋보인다.
Intermezzo라는 부제를 가진 3악장은 하바네라 리듬의 서주가 포함된 전형적인 세도막형식으로 각 부분에서의 대칭적인 마디 구조는 랄로의 보수적인 성격을 볼 수 있다.
4악장은 전곡을 통하여 화성과 음형이 단순한 유일한 느린 악장으로, 서정적인 변주형식이 사용되었으며 이 협주곡의 선율적인 절정을 이룬다.
마지막 5악장은 변형된 론도형식을 취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곡법을 더욱 부각시킨다. 2박 계통의 경쾌한 리듬의 춤곡 형태를 유지하다가 중간부에서 스페인 고유의 하바네라 리듬이 나타난다.
랄로가 이 곡을 작곡할 당시 절친한 친구였던 스페인 출신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Pablo sarasate, 1844-1908)가 랄로에게 주로 남부 스페인의 민속음악의 요소들을 알려 주었는데, 이를 통해 랄로는 스페인 민속음악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심도 있는 연구를 하게 된다. 남부 스페인의 민속음악은 리듬이 강조된 플라멩코 등의 춤곡이 대표적으로, 랄로는 이러한 춤곡의 리듬을 중심 소재로 하여 <스페인 교향곡>을 작곡하였다.
일반적으로 환경과 조건은 그곳에 거하는 사람의 생각의 테두리를 만들게 된다. 어떤 사람은 환경과 조건에 의해 범위를 한정지어 생각하고 행동하며, 또 어떤 사람은 환경과 조건을 적절히 이용하여 생각과 행동의 범위를 확장한다.
랄로는 후자의 사람이다. 육체는 프랑스에 있었음에도 생각의 지평을 넓혀 스페인을 그의 오선지에 담아 우리에게 오롯이 스페인의 감흥을 전해준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나는 어느새 ‘라 만차의 기사’가 되어 로시난테를 타고 산초와 함께 스페인의 평야를 거닐고, 풍차와 맞서고, 무희의 정열적인 춤에 넋이 나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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