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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

사라사테 - 카르멘 환상곡 [Sarasate - Carmen Fantasy op. 25]

by 정마에Zeongmae 2018.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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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데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는 19세기 낭만주의시대 스페인의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였다. 그는 작곡가로서 보다는 19세기에 태어난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들인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 1831-1907),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Henryk Wieniawski, 1835-1880), 외젠 이자이(Eugène Ysaÿe, 1858 - 1931)등과 더불어 19세기 가장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 가운데 하나였다.

 

 

 

사라사테는 1844년 스페인의 도시 팜플로나(Pamplona)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전속 밴드 마스터였는데 사라사테가 어린 시절 그의 가족은 라 코루나라는 도시로 이주하게 되었다. 여기서 소년 사라사테는 처음으로 바이올린 레슨을 받게 되었고 곧 아버지의 실력을 따라잡으며 8살에는 첫 공개 연주회를 열었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낸다. 이후 마드리드(Madrid)로 옮겨간 파블로는 이사벨라 2세 여왕(Isabella II)의 후원과 나바라 주의 장학금을 받으며 파리 콘서바토리로 유학을 떠나 정-델핑 알라르(Jean Delphin Alard, 1815-1888)를 사사했다. 1857년부터 58년 사이에 사라사테는 1등상을 거머쥐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작곡과 편곡 작품들을 연주함으로써 진정으로 독립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의 세계적인 명성을 쌓을 수 있었다.

 

특히 사라사테는 바이올린 연주의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꾼 극소수의 바이올리니스트 가운데 한 명으로 추앙받는다. 황홀하면서도 강렬한 톤과 당시로서는 신선하게 다가왔던 폭이 넓으면서도 지속력 높은 비브라토의 사용, 완벽한 왼손 자판 운지와 힘찬 오른손의 보잉, 자신의 작품만이 아니라 모든 작품을 아우를 수 있는 엄청난 레퍼토리 등은 그를 역사적인 연주자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누구보다도 고귀하면서도 예술적인 톤을 구사했던 사라사테의 예술적 창조력은 점차 감각적이면서도 랩소디적인 경향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렇듯 자유분방한 연주 스타일은 청중들에게 더욱 신기한 체험의 순간으로 다가왔고 해를 거듭할수록 청중들은 사라사테의 연주에 더욱 더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작곡가로서의 명예와 연주자로서의 명성, 스페인 왕실의 비호를 등에 업은 사라사테는 당대 가장 많은 부를 쌓은 연주자로 기록된다. 그의 삶에는 ‘성공’ 그 이외의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1882년 파리에서 출판된 초판본의 표지(Violin & Piano Reduction)

 

사라사테의 많은 작품들 가운데에서 [찌고이네르바이젠]과 더불어 [카르멘 환상곡]은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명곡으로 손꼽힌다. 1882년에 작곡된 [카르멘 환상곡]은 조르쥬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 등장하는 명장면들을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 독주를 위해 축소, 정리, 편곡한 작품으로서, 사라사테의 초인적인 테크닉과 탁월한 극적 감수성이 집약되어 있는 명곡 가운데 명곡이다.

 

4막 전주곡인 아라고네이즈, 1막에 등장하는 하바네라, 세기디야, 2막에 등장하는 집시들의 춤이 차례로 등장하는 이 작품은 바이올린의 트릴, 겹음, 트레몰로, 플래절렛, 피치카토 등등이 현란하게 펼쳐지며 연주자로 하여금 고도의 비루투오시티와 드라마틱한 추진력을 요구한다.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난곡 가운데 난곡으로서, 테크닉도 어렵지만 오페라 원곡에서 기인하는 사랑과 질투의 희비쌍곡선이 만들어내는 연출적인 효과를 극적이고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것 또한 지극히 어렵다.

 

비제의 주제들은 인기가 많았지만 작품의 성공에 비해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없었다. 사라사테는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특성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선율의 음표뿐만 아니라 속에 담긴 영혼까지 바이올린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특히 레가토 부분에서는 바이올린이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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