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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슈트라우스3

올바르게 필라델피아에 가난한 어린 소년이 있었다. 집안이 가난하여 초등학교 2학년까지만 다녔다. 소년은 13세 때부터 벽돌공장에서 일하였다. 그런데 어린 소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매주 일요일 교회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비가 조금만 내려도 진창길이 되어 다니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어른들은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어느 주말,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발목까지 파묻히는 진흙길을 거닐면서 소년은 생각했다. '만약 자기들 집 같으면 벌써 훌륭하게 벽돌이나 돌로 포장하였을 것이라고...' 소년의 눈에는 벽돌로 포장된 길과 그리로 들어가는 자기 또래의 많은 아이와 어른들이 눈에 아른 거렸다. 소년은 야심 찬 결심을 했다. "한번 내 손으로 잘 다듬어진 길을 만들어 보겠노라고." 그리곤 소년은 월급 .. 2020. 3. 31.
브람스와 요한 슈트라우스 브람스와 요한 슈트라우스는 절친이었죠. 그런데 브람스와 슈트라우스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음악적으로 브람스는 무겁고 어두운 곡을 주로 작곡했고, 슈트라우스는 쾌활하고 밝은 왈츠를 주로 만들었죠. 브람스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반면 슈트라우스는 결혼을 세번 했고요, 브람스가 외모에 별 관심을 갖지 않은 반면 슈트라우스는 옷차림에 엄청 신경을 썼고 화장까지 하는 멋쟁이였습니다. 브람스는 늘 슈트라우스의 콘서트에 갔고, 단순한 화성구조 위에 펼쳐지는 화려하고 크로마틱한 그의 음악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이 두 작곡가의 대조적인 곡을 함께 들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브람스의 곡은 그리그가 "안개와 구름으로 찟긴 풍경 속에서 폐허가 된 오래된 교회들이 보인다..... 이것이 브람스다."라고 표현한 으로.. 2020. 3. 2.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I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I세(Johann Strauß I, 1804~1849)는 숙박업을 하는 부모에에서 태어났고, 7세 때 어머니를 여의였습니다. 슈트라우스의 계모는 그를 제본소의 도제로 보냈는데, 그는 제본을 착실히 배우면서 틈틈이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배웠습니다. 1822년 제본 마이스터가 되었으나 1824년부터 왈츠 작곡가 란너(Josef Lanner, 1801~1843)가 결성한 4중주단네서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의 길을 가고자 결심했습니다. 1825년 21세가 된 슈트라우스는 마리아 안나 슈트라임(Maria Anna Streim)과 결혼하여 첫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 II세를 나았고,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고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I세는 1835년 궁정.. 2018.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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