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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3

지휘의 역사 2 순수한 최초의 직업적 지휘자는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ow, 1830~1894)였다. 뷜로는 베를리오즈와 바그너가 작곡가 겸 지휘자로 활동하는 사실에 자극을 받아, 정열적인 해석을 내리고 올바른 템포와 프레이징으로 명쾌하고 안정된 표현을 이룩했다. 그는 거의 암보로 지휘했다. 근대의 지휘법은 어떤 형태로든 뷜로우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브루노 발터도 뷜로우의 연주를 듣고 지휘자가 되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뒤이어 독일 낭만파의 극적인 기복을 살린 표현법을 확립한 헝가리 지휘자 니키쉬(Arthur Nikisch, 1855~1922)의 공적은 위대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바인가르트너(Paul Felix Weingartner, 1863~1942)가 나타남으로써 그때까지의 지휘에 큰 수정이 가.. 2023. 12. 25.
지휘의 역사 1 지휘자가 직접 지휘를 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선 뒤부터였다. 그 이전의 지휘 활동은 분명한 방법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고, 합창이나 합주의 통일을 꾀하기 위해 갖가지 수단을 임시로 택했을 뿐이었다. 그리스 비극에서는 합창을 발장단으로 지휘하거나 중세에는 교회 합창단의 수석 가수가 손뼉 박자를 치기도 했다. 그 손뼉 박자 대신에 손동작으로 속도나 박자를 지시하게 되고 문예부흥기의 다성음악 전성기에는 악보를 말아 쥐고 박자를 쳤고 또 마루를 두들겨 박자를 맞추었다.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기악의 발달과 함께 합주가 많아지면서 그것을 통일하기 위해 하프시코드의 통주저음이 깔렸는데 교회에서의 오르간과 같은 작용으로 지휘의 역할을 했다. 또 통주저음 대신 기다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들겨 지휘를 한 일도.. 2023. 12. 24.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의 역사 1 19세기말 서양음악이 전래된 후 100여 년간 우리나라의 공연예술계의 발전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다. 특히 해방이후 자주적 상황에서 활발한 모습으로 진행된 교향악단 활동은 국내 공연예술 활동의 근간을 이루는 문화 인프라(Cultural Infrastructure)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의 역사에서 현재 가장 오래되었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단체는 서울시향으로 이는 1945년 창단된 고려교향악단이 그 모체이다. 그렇지만 고려교향악단 이전에도 소규모 관현악 운동과 관악합주 활동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이 도입된 것은 교회를 통한 선교활동에서 비롯되었다. 그 시기의 음악 교육은 학교에서의 정규 교육 차원에서 이루어지기보다는 교회의 찬송가를 중심으로 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몇 가지 자료.. 2018.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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