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말 서양음악이 전래된 후 100여 년간 우리나라의 공연예술계의 발전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다. 특히 해방이후 자주적 상황에서 활발한 모습으로 진행된 교향악단 활동은 국내 공연예술 활동의 근간을 이루는 문화 인프라(Cultural Infrastructure)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의 역사에서 현재 가장 오래되었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단체는 서울시향으로 이는 1945년 창단된 고려교향악단이 그 모체이다. 그렇지만 고려교향악단 이전에도 소규모 관현악 운동과 관악합주 활동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이 도입된 것은 교회를 통한 선교활동에서 비롯되었다. 그 시기의 음악 교육은 학교에서의 정규 교육 차원에서 이루어지기보다는 교회의 찬송가를 중심으로 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몇 가지 자료를 살펴보면 1884년 갑신정변과 1894년 갑오개혁이 우리나라 양악대의 탄생 계기가 된다. 당시 신무기로 무장을 한 신식 군대가 창설되어 일본이나 러시아, 미국의 군사 고문관을 데려와 훈련을 받기 시작했고, 근대 군사교육에 맞는 음악을 연주하는 취주악대 조직의 필요성이 생겼다. 이에 일본인 교관이 일본에서 가지고 온 신호나팔과 북으로 편성한 ‘곡호대’라는 것이 조직되어 군악대의 시초가 된다.
▲ 곡호대의 행진 모습
한편 이 무렵, 민영환이 고종의 특사로 러시아에 파견되었다가 신문화를 견문하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보고 귀국하여 군대의 근대화와 함께 서양식 군악대의 창설을 건의한다. 광무 4년(1900년) 12월 22일자 관보를 보면 ‘군악대 설치하는 건’에 군악 2개대를 설치, 1등 군악장(대장) 1인, 2등 군악장(부장) 1인을 위시하여 총 51인으로 구성하는 것이 나와 있다. 그리고 그 이듬해 일본에서 악대의 지휘자로 있던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를 초빙하여 6월에 이윤용을 악대장으로 하고 복장과 악기를 갖춘 군악대가 발족되었다.
▲ 프란츠 에케르트
이 군악대의 최초의 연주회는 기록에 의하면 고종황제 탄신일(1901년 9월 7일) 연주로, 당시 유일한 영문 잡지인 ‘The Korea Review' 1901년 9월호에 실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번 축하연에는 많은 내외 귀빈이 참석하였는데, 황제의 탄신을 축하하기 위하여 지난 9월 7일 아침 궁정에 참석한 외국 손님에게 특히 기억될 만한 순서는 새로 조직된 군악대의 첫 출연이었다. 이 악대는 에케르트 박사의 지도로 훈련을 받았으며, 총 27명의 대원으로 단지 4개월 남짓의 연습으로 외국 악기를 그렇게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는 것이 특히 외국 손님들에게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정확한 박자, 흐르는 듯한 리듬과 하모니, 이런 모든 것이 한데 어울려 상상 밖의 효과를 내었으며, 청중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박수갈채는 그칠 줄 몰랐으며, 이대로만 간다면 머지않아 동양에서 경쟁할 다른 악대가 없게 될 것이다.’
이 군악대가 당시 연주했던 곡목으로는 각 국의 국가, 무도곡, 가곡, 행진곡 등 이었으며, 파고다공원 서편에 군악대 사무실을 마련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파고다공원에서 시민을 위한 음악회를 열었다고 한다. 그러나 군의 사기양양이나 황실의 행사뿐만이 아닌 시민을 위한 공개연주회도 열었던 이 군악대는 1907년 8월 1일 일제에 의한 한국군 강제 무장해제와 함께 해산되었다.
▲ 경성악대
그렇지만 왕실에서는 군악대만은 존속시키기 위해 ‘이왕직 양악대’라는 이름으로 이 악대를 부활시킨다. 하지만 1910년 한일합방으로 왕실에서 경비를 지출할 수 없게 되어 악대는 사라지게 된다. 그러자 군악대의 주도 멤버였던 이윤용, 백우용 등은 한편으로는 모금운동을 벌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운동회 등에 나가 약간의 보수를 받으면서 이 악대의 명맥을 이어가게 된다. 이것이 ‘경성악대’라는 민간 단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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