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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렌치의 주제에 의한 푸가 c단조, BWV 574 ■ 레그렌치의 주제에 의한 푸가 c단조, BWV 574Fugue on a theme by Legrenzi, for organ in C minor, BWV 574 (BC J63) 1707년부터 1708년까지의 1년 동안 바흐는 뮐하우젠의 성 블라지우스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였다. 이 도시에서 그는 교회 칸타타 창작을 시작했고, 『그리스도는 죽음의 포로가 되어서도』(BWV4)와 『하나님의 세상이 가장 살기 좋은 세상』(BWV106) 등 초기 칸타타의 명작이 태어났다. 또 1707년 10월 17일에는 아른슈타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른하임의 작은 교회에서 마리아 바르바라(Maria Barbara)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 푸가는 아마도 아른슈타트에서 '새교회(Neue Kirche)'의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 2018. 1. 24.
유엔 지구평화마을 한국대표부와의 MOU 오늘 ‘드림가디언즈’와 ‘유엔 지구평화마을 한국대표부’와의 업무협약식이 대표부 사무국에서 있었습니다. 앞으로 양 기관은 인류의 평화와 유엔이 아시아에서 진행할 인도주의적 사업에 함께 협력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8. 1. 23.
다시 무거워진 몸.... 어제(1. 19, 금)는 간만에 강행군을 했어요. 지난 연말부터 나를 잡고 괴롭히던 감기 기운이 좀 가시는 듯하여 종일토록 약속을 잡았죠. 새벽에 일어나 꽃시장에, 그리고 오전엔 오후에 있을 3건의 미팅을 위한 자료를 만들고, 오후엔 지하철 2호선을 따라 미팅을 하고 밤에는 영등포에서 포럼 참석으로 하루를 마무리했어요. 어제의 미팅은 일단 성공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첫 미팅은 안동의 임야에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는 건이었는데, 제반 사항을 검토하고 진행하는 것으로~~^^ ​ 두번째 미팅은 태양광 발전 모듈 및 저장장치의 영업권에 관련한 것이었는데, 이 설비는 양산에 들어 가면 발전효율에 있어 획기적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에요. 현재 개발 마무리 단계로 향후 판권에 대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세번째는 강.. 2018. 1. 20.
블레셋의 찬양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사사기 16장 24절) 삼손이 잡힌 사건은 블레셋의 방백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까지도 기뻐하며 축제의 제사를 드리게 되는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삼손에 대한 적대 감정이 일반 백성들까지 널리 퍼져 있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삼손에 의한 그들의 피해가 얼마나 컸었던가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제 블레셋의 백성들은 삼손이 눈이 뽑힌 채 포로로 끌려오는 모습과 옥중에서 연자맷돌을 돌리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신 다곤을 찬양하고 있다. 다곤(Dagon)이라는 신은 원래 서부 셈족의 곡물 신이었는데(삼상 5:2-7, 대상 10:10), 블레셋 족속이 아모.. 2018. 1. 20.
유엔 대사 미팅 & 앙상블 첫 수업 1. 16. 화 여의도에서 유엔 지구평화마을 한국대표부 대사님을 만나 유엔이 아시아에서 진행할 인도주의적 사업에 드림가디언즈가 함께 하는 것에 대한 논의를 했습니다. 앞으로 몇 차례 더 만나 드림가디언즈가 해야할 역할과 분야에 대한 정리를 하게 될 것입니다. ​ 그 동안 ‘악기기부’를 통해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악기로 첫 교육이 있었습니다. 7명으로 시작합니다. 교육 및 연습 장소는 천호교회에서 흔쾌히 제공해 주셨습니다. 악기가 처음인지라 어색하고 서툴었지만 그래도 모두 즐겁게 열심히 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 ​ 2018. 1. 17.
순정의 가곡왕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I 구차한 살림이었다. 거기다가 어린 자식들은 복작거렸다. 빈의 변두리 초등학교 교장의 수입으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 수입마저 국가에서 제정한 월급제가 아니고 학생들이 납부한 교육비의 일부를 가지고 교사의 생활비와 자신의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사립학교였다. 남편보다 일곱 살 위인 아내의 검소하고 야무진 살림살이가 아니고는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살림이었으나 부부간의 애정은 각별한 것이었다. 그들은 열네 명이나 자녀를 보았고 그 중에 살아 남은 자식이 다섯명, 네 째 아들이 프란츠 슈베르트였다. 프란츠의 할아버지는 시골 농부였고 그의 아버지(Franz Theodor) 역시 농사를 짓다가 임시 교원양성소를 나와 교사가 되었다. 어머니 역시 시골 열쇠장수의 딸이었다. 그러기에 자녀를 열네 명을 낳고.. 2018.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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