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연주함에 있어 사소한 기술적 문제는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기술적 문제들은 모두 음악적 목표와 연관된다. 한마디로 예술적 방향을 떠받쳐주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술적 완벽함을 연주의 목표로 삼는다면 그건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모든 악기의 호흡이 착착 맞고, 정확한 음을 연주하고, 음높이의 연결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바이고 그렇게 됐다고 해서 좋아한다면, 그건 바보 같은 일이다. 그저 음이 어긋나지 않게 잘 연주했다고 해서 지휘자가 만족한다면, 대단히 수준 낮은 연주라 할 수 있다.
음표는 문자와 같다. 서로 결합할 때 비로소 의미가 생겨난다. 문자로 단어를 만들고, 단어를 결합해서 문장을 만들고, 문장으로 뭔가를 표현하지 않는가? 음악도 마찬가지다. 음들이 모여 하나의 악절이 되고, 거대한 악절이 음악의 악장에서 한 에피소드를 이룬다. 그리고 이것은 분위기를 만들고, 내용과 어떤 표현을 만든다. 따라서 연주자들은 이런 음들과 기호들 뒤에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어떤 이미지와 분위기가 있는지 찾아야 한다. 그럴 때 더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
기호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데만 집중한다면, 이 크레셴도를 올바르게, 저 음을 맞게 연주하는 데만 신경 쓴다면, 음악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셈이다.
작곡가가 이 악절로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연주를 하려면 작곡가가 표현하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저 음들을 더 짧거나 길게 연주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무슨 뜻 일지 생각해야 한다. 간절히! 그리고 그런 뜻을 담아서 연주해야 한다.
지휘자는 항상 음들 뒤에 놓인 것을 표현하는 수준에 도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런 수준을 나는 우주적이라고 말한다. 내가 왜 이것을 '우주적' 수준이라고 부를까? 지구의 궤도, 자력, 중력을 벗어나 지구를 떠나면 우주에 있게 된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는 음정을 지키는 문제, 정확성의 문제, 너무 짧거나 너무 긴 연주의 문제가 다 사라진다. 오로지 분위기와 상상만이 존재한다.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면 천국에, 우주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가기란 무척 어렵다. 중력을 극복해야 하는데 중력은 항상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Music Story >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케스트라 음악의 가능성(Possibilities of orchestral music) (45) | 2023.09.23 |
---|---|
지휘자 멘델스존 (4) | 2023.08.31 |
해석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발생기의 지휘자들 (9) | 2023.08.22 |
거장주의의 부활에서 국제 시대로 (11) | 2023.08.17 |
오케스트라가 중시해야 하는 것 (1) | 2023.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