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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지휘자와 오케스트라

거장주의의 부활에서 국제 시대로

by 정마에Zeongmae 2023.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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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거장들의 시대는 어떠한 것이었을까? 자신들의 확고한 전통 속에서 문화가 배양되었던 시대. 거기에는 자신들이 놓여 있는 상황이나 안목에 자신감들이 있었을 것이다.

구스타프 말러(1860 ~ 1911) / 1909년  빈 궁정 오페라의 음악 감독 시절

    예를 들면 빈의 전통 속에서 말러가 나왔고, 그는 빈 필의 지휘자라는 타이틀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 속에는 빈의 연주 양식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다. 지휘자도 오케스트라도 같은 토양 속에서 나왔으니 따라서 연주에서도 동시대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대담한 시도가 가능했던 게 아닐까 하는 견해도 있다.

    그 문제는 상호 간의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가에 따라 다르다. 상대가 하는 말이 농담인지 본심인지를 알 수 있었던 시대. 그 시대에서 오늘날로 변화했다는 것은 연회장의 만담이 텔레비전의 코미디로 바뀜으로써 본질적인 것이 변형될 수밖에 없었던 것과 비슷하다.

한스 크나퍼츠부슈(1888 ~ 1965)

    크나퍼츠부슈를 듣고 있으면 정말로 장난을 치고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오케스트라도 그것을 알고 있다. 듣는 쪽에서도 그것을 알고 있고 또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국제화 시대가 되면서 관객의 반 정도는 관광객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국지적인 사정들에 대해서 무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들이 늘어나면 이제까지 식구끼리만 통했던 극단적인 제스처는 지양해야 한다. 관광객의 입맛에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 ~ 1957)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그러한 지역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식이 일반화되었다. 그런 운동을 전쟁 전부터 벌여 온 사람이 바로 토스카니니였다. 독일 심포니의 전통을 알지 못했던 이탈리아 출신의 토스카니니는 <음악은 기호다> 하고 잘라 말했다. 때마침 세계는 국제 사회로 발돋움을 시 작하고 있었고, 음악계도 지역주의의 법칙을 고수하기보다는 토스카니니의 방식이 정확한 기호 처리가 가능하므로 좀 더 보편성이 있다고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토스카니니는 악보에 충실하다>는 평판을 듣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잘 들어 보면 템포가 흔들리는 등 허점이 드러나기도 하는데 역시 당시의 주위 사람들보다 음악에 대한 인식이 좀 빨랐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토스카니니의 위대한 점은 음악을 어느 일정한 템포로 이끌어 나가면 정리가 되어 듣는 쪽에 쉽게 전달된다는 것을 간파했다는 데에 있다. 다른 지휘자들이 그저 생각나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반면 그는 객관화해야 알기 쉽다, 자신을 죽여야만 이 개인적 주장이 더 명확해진다고 생각한 최초의 지휘자였다.

    토스카니니는 스케치 단계에서는 보편성을 추구하며 정확한 도형에 맞춰 지휘봉을 휘둘렀다. 그러나 색깔 입히기 단계에 들어가면 개성을 발휘하고 장식음을 곧잘 달았다. 당시의 지휘자들은 대개가 처음부터 자신만의 색채가 들어있는 지휘를 구사했다. 그래도 오케스트라나 음악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 귀 기울여 들으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토스카니니는 그런 점에서 형식 우선 지휘자의 원조라 고 할 수 있다.

로린 마젤(1930 ~ 2014)

    마젤과 같은 지휘자는 기본적인 지휘법에서는 확실한 원칙을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러나 그도 실연할 때에는 꽤 과감한 연주를 들려주곤 한다. 그러나 실상 그 자신은 처음부터 그렇게 할 의도는 없는 듯이 보인다. 지휘를 하면서 완전히 자신을 연소시키고 무아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감정이 고조되면 일은 벌써 일어나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스타일이 사고를 일으키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갑작스러운 고조가 있어도 무난하게 연주해 낼 수 있는 평형감각이나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케스트라 쪽에서도 그의 스타일에 익숙해져 있어서, 이 부분에서 격렬하게 감정을 표현하겠다 싶으면 미리 그 부분에 예방선을 긋는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오케스트라는 쉽게 피곤해진다. 따라서 마젤과 같은 지휘자는 상임지휘자로서 그리 오래가는 편은 아니다.

    19세기 거장들은 예술을 부흥시키는 심정으로 지휘를 했다고 할 수 있다. 크나퍼츠부슈 같은 지휘자는 <갑자기 다가오는 감정의 물결>이라는 측면에서는 마젤과 유사했지만 그는 자신이 하는 것이 장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만담의 명인이 뿜어내는 일종의 화술과 같은 것으로 여겼다. 반면 마젤에게는 자신의 비정상성에 대한 자각이 거의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설계도로서 곡이 완벽하게 들어가 있었지만 그때그때 연주 홀을 채우는 악기들의 울림이나 기분에 따라 직감적으로 연주 방식을 바꾸도록 지휘했다. 이러한 연주는 음만으로는 그 인과 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동영상으로 감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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