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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나눔

감자꽃

by 정마에Zeongmae 2022.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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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꽃 핀 건 자주감자
파 보나마나 자주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마나 하얀 감자

-귄태응의<감자꽃>

출처 - 네이버 블로그(강원도 여행 사진과 영상)


권태응의 시 <감자꽃>을 읽는다.
우리말 기본 가락 4음보를 살린
동시 노랫말이다.
이 시는 4줄 36자로 된 아주 짧은 동시지만
울림의 진동과 파장은 매우 크다.
어찌 보면 이 시는
지극히 단순하고 사실적인 이야기 같지만
의미를 넣어서 읽으면
숨어있는 그 뜻은 더욱 깊고도 넓다.

이 시인은 왜 농촌에 피는 그 많은 꽃 중에서
하필 감자 꽃을 시의 소재로 삼았을까를 생각해 본다.

순박하고 애잔한 꽃빛깔을 갖고 피는 꽃이
감자꽃이다.
감자 맛의 선입견 때문인지
꽃빛마저 진하고 아리다.
배고픈 시절 주식의 하나였던
감자를 얻을 수 있는 꽃이어서
바라보는 빛깔이나 모양이
그리 처연했던 꽃이다.

감자꽃을 바라보면서
어머니를 생각했고 누이를 생각하는 그리움이 있었다.
감자 꽃을 보면 자주색 흰색 옷고름이 보였다.
농민과 서민의 얼굴이었던 감자 꽃을
시의 소재로 간택한 이유였을 것이다.

감자꽃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만
감자는 깜깜한 땅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사실적 구분지區分肢(이분법)를 설정해 놓고 있다.
밝고 어둠이라는 명암 관계를
큰 밑그림으로 놓고 있다.
낮과 밤, 빛과 그림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결국은 해방의 염원 같은 것이다.

꽃과 감자는 한 줄기 한통속이다.
줄기만 당기면 따라 올라오는 것이 감자다.
감자 눈을 심으면 감자 싹이 자란다.
그 눈빛은 아리고 맵다.
그 싹에서 자란 감자 줄기를 따라가면
또 감자를 만난다.
그러므로 감자꽃과 감자의 DNA는
똑같을 수밖에 없고
속일 수 없는 같은 핏줄이다.
즉 유구한 역사의 민족정기까지 포함해서
같이 읽어 주어야 한다.

이 시에 있어서의 핵심은
<파보나 마나> 라고 하는 부사구가 갖는
힘찬 의미에 있다.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못할 때 갖는 아이러니를
총체적으로 비유하는 은유의 알레고리다.

일본 유학까지 한 시인이 생각한 바 있어서
어린이나 어른이나 조선민족이라면
읽고 노래하는 중에
민족혼을 불러 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와세다 재학시절에 독서회를 만들었다가
치도곤을 당한 것 역시
책읽기의 위장 속에
민족혼을 불사르고 싶었으리라.

이 시는 아주 쉬운 이야기의 동시라고 하지만
싹수를 보면 결과를 짐작 할 수 있다는
역사성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만유의 진리와 같이하는
민족의 염원이기도 한 것이다.
일본 땅에 심으면 일본감자
조선 땅에 심으면 조선감자가 빤한 이치인데
창씨개명까지 해 가면서
하얀 꽃 피운 감자를
자주감자라고 우겨대는 그네들에게
붓칼을 들이댔던 것이다.
<감자꽃>은 사실을 말하고 표현하지 못하던
시대에 대한 저항적 외침이다.

읽는 나도 지금 이렇게 가슴이 벌렁거리는데
일제치하에서 이 시를 써야했던 시인은
얼마나 가슴이 뛰고 억울했을까.
어쩌다보니 감자를 캐는 계절이다.
감자덩굴의 감자꽃을 보며
파도치는 감동으로
한 시인의 가슴을 느끼게 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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