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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지휘자와 오케스트라

피에르 블레즈(Pierre Boulez, 1925~2016)

by 정마에Zeongmae 2024.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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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위(前衛)로서 역사적 필연을 탐색. 작곡가는 곧 지휘자


    작곡가이면서 지휘자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지휘자이면서 동시에 작곡도 한다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어느 음악가의 프로필이든 '작곡'이라는 사항이 반드시 들어간다 해도 아무도 그가 작곡한 곡을 들은 적이 없다든가, 혹은 작곡가가 자작곡을 지휘하기 위해 지휘봉을 잡았다가 그 연장 선상에서 다른 사람의 작품도 지휘해 본다든가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른바 대작곡가이면서 대지휘자인 경우는 그리 많지가 않다. 그것은 뭔가 이 양자가 동시에 성립하기 어려운 어떠한 요인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피에르 블레즈(Pierre Boulez, 1925~2016)

 
    작곡에도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이때 '방식'이란 반드시 방법이나 기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것과 서로 밀접하게 관계를 맺으면서 음악의 내적인 면이나 외적인 면에서 볼 수 있는 역사, 사회상을 음악에 주입시키고 조정하는, 그런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전통을 살린 양식을 취한다, 장르를 애매하 게 혼합한 스타일을 취한다, 콩세르바트와르(공 · 사 립 음악 교육 시설. 18~19세기에 세워졌다. 음악에 관한 폭넓고 완벽한 교육, 이론, 실기 과정. 파리 콩세르바트와르가 가장 우수하여 19세기 이래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배출했다)의 보수적인 그러나 세련된 스타일을 취한다, 생각해 낼 수 있는 한의 새로운 방법과 '음/음악'에 대한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해 내려고 한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겠지만 이것은 어쨌든 작곡이나 음악 연주의 태도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가령 자신의 작품을 포함한 어떤 곡을 연주하게 되면 그것은 또 하나의 다른 태도를 결정할 계기를 얻게 되는 것이고 더 나아가 하나의 작품을 해석하여 연주함으로써 자신의 작품에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작곡하는' 사람으로서 생각하던 것이 '연주하는' 사람으로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작곡가로서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다른 작곡가의 작품, 자기가 비평하기까지 했던 상대의 작품을 훌륭하게 연주해 내는 일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다. 입으로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객관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즉, 작곡가이면서 지휘자라는 것은 특별히 논리적인 존재에게서나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

    피에르 불레즈라는 작곡가는 애초에 자작 연주를 위해 그리고 '현대 음악'을 소개하기 위해 지휘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대의 작품에 공감하고  좋은 연주를 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작품이 태어나게 된 역사적 필연성을 항상 느끼며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연주를 들려준다. 그리고 어떤 곡이 이와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 계보를 수많은 과거의 음악 작품 속에서 찾아내려고 한다. 거기에는 자신이 언제나 이런 식으로 작곡을 하는 의미, 그리고 자신이 서구 근대 음악사의 아방가르드이자 그것의 뒤를 이어 다시금 시대를 색인해 간다는 일종의 계몽주의와 자기 중심주의 같은 우쭐함이 있다(이것은 결코 험담을 하자는 게 아니다. 정치 현장에 이러한 사람이 있다면 곤란한 일이겠지만, 음악의 장에 그러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곡의 탄생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불레즈가 녹음하는 레퍼토리를 보면 나와 관계없는 작곡가의 작품은 연주하지 않습니다 하고 말한다는 생각이 든다.

    대체로 그는 프랑스 음악의 전문가처럼 보이지만 취급할 수 있는 곡은 의외로 한정되어 있다. 사티는 물론 6인조(1918년경 조직된 미요, 오네게르, 오릭, 플라크, 뒤레, 타이유페르 6인의 모임. 낭만주의, 인상주의에 대한 반발, 선율의 대위법 복귀, 같은 세대의 미의식 등 공통점을 가진다. 「에펠 탑의 신랑 신부」(1921년) 공동 제작)나 이베르의 냉정하고 단순한 곡, 콩세르바트와르 같은 교수진의 작품도 연주하지 않으며, 독특하고 특이한 음향을 개발을 한 드뷔시, 라벨, 메시앙 등이 불레즈 연주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독일 음악에서는 바그너에서부터 그가 연주하는 유형의 선구자라고 말할 수 있는 베베른을 포함한 빈 악파에 이르는 선이 주류를 이룬다. 브루크너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제외된다. 러시아 작품은 몇몇 곡을 제외하고 거의 연주하지 않는다.

    '작곡가이면서 지휘자'인 사람의 윤리라'는 것은 불레즈에게서만 볼 수 있었던 일반성이 결여된 특수한 특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불레즈의 연주는 분석적이고 윤리적이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자신이 그러한 분위기의 곡을 선택하며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지성주의는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때때로 작품은 작곡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작품 자체의 뜨거움, 생동감이 연주자를 사로잡을 때 비로소 훌륭한 연주가 탄생되는 경우가 가끔씩은 있다. 대부분 지성에도 뜨거움에도 이르지 못하고 뭔지 모를 분위기로 끝나고 마는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따라서 불레즈의 작품이나 연주에 어딘가 좀 불만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이 뜨거움의 결여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작곡가이며 지휘자'라는 존재 방식에 너무나도 진지하다는 점, 이 윤리성이야말로 불레즈의 매력임에는 틀림없다.

https://youtu.be/qiygeWIIpxs?si=2sAkHfmzRiX7SZgd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 피에르 불레즈 지휘

 


 

 Exploring historical necessity as an avant-garde. Composer is a conductor


    What does it mean to be a composer and a conductor?

    There are many examples of him being a conductor and composing at the same time. Even if a musician's profile necessarily contains a "composition," no one has ever listened to his composition, or a composer takes the baton to conduct his own song and then directs someone else's work. However, there are not many cases of so-called master composers and master conductors. Isn't it because there is some factor that makes it difficult for both to establish at the same time?

    There are also many ways to compose. At this time, 'method' does not necessarily mean a method or technique. It can be said that it is a method of instilling and adjusting the history and social image that can be seen in the inner or outer aspects of music while closely related to these things.

    They adopt a style that utilizes the traditions of their community, an ambiguous mix of genres, conservatwar (public and private music education facility). It was established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Extensive and complete education, theory, and practical courses in music. It takes on the conservative but sophisticated style of Paris Conservatwar, who is the best and has produced the most outstanding talents since the 19th century. He tries to express new ways as much as he can think of and ideas about "music" in his work. ... For example, there is no limit to it, but this is a question of how to determine the attitude of composition or musical performance anyway.

    For example, if you play a song, including your own work, it gives you an opportunity to decide on another attitude, and furthermore, by interpreting and playing one work, you can influence your work in any form. What you think of as a 'composer' is to think of as a 'performer'. As a composer, it is not so simple to brilliantly perform the work of another composer in the opposite position, the work of another person you have even criticized. So even with your mouth, it would be possible if you could take an objective position. In other words, I would like to say that being a composer and a conductor is possible only from a particularly logical being.

    Pierre Boulez, a composer, originally started conducting for his own performance and to introduce 'modern music'. However, he not only sympathizes with contemporary works and performs well, but also plays that reveal that he is always feeling and thinking about the historical inevitability of the creation of such works. He also tries to find the genealogy that led to such a 'situation' in numerous past musical works. There is also a sense of always composing in this way, and a kind of conceit such as enlightenment and egocentricity that he is the avant-garde of Western modern music history and follows it and indexes the times again (this is by no means to gossip. It would be difficult to have such a person in the political field, but having such a person in the musical field can be considered a good thing for the birth of a new song). Therefore, when I look at the repertoire recorded by Boulez, I think that he does not play the work of a composer who is not related to me.

    He seems to be an expert in French music, but he can handle only a limited number of pieces. Satie as well as six members (a group of six members including Miyo, Oneguer, Orick, Plaque, Dure and Tayyupers organized around 1918). They share commonalities such as romanticism, resistance to impressionism, reversal of melody, and aesthetic consciousness of the same generation. He does not perform "The Bride and the Bride of Eppel Top" (1921) or "Cool and Simple" by Yibert, or works by faculty such as Concervatwar, and Debussy, Ravel, and Messian, who developed unique and unique sounds, are at the center of the concert.

    In German music, lines ranging from Wagner to the Vienna School of Music, including Bern, who can be said to be a pioneer of the type of music he plays, dominate. Bruckner and Richard Strauss are excluded. Russian works rarely perform except for a few pieces.

    It can be said that the "ethics of a composer and a conductor" is a special characteristic that lacks generality only found in Boulez. Boulez's performance is analytical and ethical. That is certainly true. He himself chooses songs with such an atmosphere, and in most cases this intellectualism succeeds. However, sometimes a great performance is created only when the heat and vitality of the work itself captivates the performer regardless of the composer's intention. Most of them end up in an atmosphere that is unknown and reaches neither intellect nor hot. Therefore, if there is something unsatisfactory about Boulez's work or performance, it can be said that there is a lack of heat. However, this ethics must be the charm of Boulez, who is so serious about the way he exists as a composer and a condu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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