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형식과 선율의 내적 공감, 독일 · 오스트리아의 전통을 잇는 거장
1965년경, 어느 연주회의 프로그램 팸플릿에 눈에 띄게 단정 한 얼굴을 한 젊은 지휘자가 등장했다. 자발리쉬였다. 그가 지휘한 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7번이었다. 지휘하는 모습도 생김새와 마찬가지로 단정하고 절도가 있었다. 당시 청중들은 압도할 듯한 지극히 전통적이고도 중후한 연주 스타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지휘 동작도 대략적으로 음악 전체를 디자인해 가는 전통적인 독일 스타일이 유행이었다. 자발리쉬의 지휘는 그러한 스타일과는 대조적으로 독일에도 새로운 시대의 감각이 생겨나고 있음을 통감케 하는 새로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음악에는 그와 같은 단정하면서도 절도 있는 모습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형식의 투명함과 약동하는 리듬, 음악 스스로가 뿜어 내는 율동감이다. 그것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7번에 잘 어울리는 것으로 그날 자발리쉬의 연주는 그 무렵 있었던 연주회 중에서도 돋보이는 명연이었다.
이 시기 자발리쉬 연주의 특징은 이러한 형식의 투명성과 리듬 감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무렵 필립스에서 발매된 바이로이트 실황 녹음 음반 중에 자발리쉬가 지휘한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나 「탄호이저」의 연주에도 그러한 특징들을 느낄 수 있다. 생소하게 느껴지는 빠른 템포로 전체를 힘차게 끌어당기는 자발리쉬의 음악은 당시 절정기를 맞이하고 있던 빌란트 바그너(Wieland Wagner,1917~1966. 상징적인 연출로 잘 알려진 바그너 연출가)의 신바이로이트 양식에서 나타난 바그너의 <탈 신비화>의 한 전형이기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발리쉬는 그때까지와는 다른 각도의 시각에서 놀라움을 선사했다. 이 시기는 그가 바이에른 국립 가극장의 음악 총감독으로 오페라 지휘자의 경력을 충실하게 쌓아가는 때이기도 했다. 그 무렵 그는 한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슈만의 가곡 하나를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쳐가며 들려주었다(이 무렵부터 자발리쉬는 리트 반주 피아니스트로서 활동을 펴고 있었다). 그때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준 것은 노래를 표현하는 자발리쉬의 풍요로운 마음이었다. 노래한다는 것, 선율에 대한 내적 공감이 자발리쉬 안에 명확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케 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발리쉬의 음악 전체가 <노래한다>는 요소를 축으로 변화해 갔다. 아마도 자발리쉬 내면에서 <청년기>가 끝나고 <성숙>과 <수확>의 시기가 이때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인상에 남는 자발리쉬의 연주는 종종 무대에 올렸던 대규모의 성악곡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은 제쳐 두고라도 「미사 솔렘니스」나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 등이 있다. 이후의 연주에서 자발리쉬는 형식이나 리듬의 투명함과 율동에 <노래하는> 풍요로움을 결합시킴으로써 음악의 품격을 안정시키고 음악의 반향과 프레이징을 유연하게 확장하여 모순 없이 통합하는 경지를 열어 나아가고 있다. 지휘하는 모습도 단정함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열기를 띠게 되었다.
자발리쉬는 청년기 그의 음악이 가지고 있던 특징들을 희생하지 않고 <노래하는 음악>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가능성을 열어 보임으로써 어느덧 대지휘자들이 사라진 독일권에서 대표적 지휘자의 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자발리쉬가 <노래하는 음악>을 발견함으로 독일의 대지휘자들, 푸르트벵글러나 크나퍼츠부슈가 지니고 있던 프레이징 감각을 몸에 익혔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프레이징 감각은 중요한 것이다. 그 감각에 의해 자발리쉬는 60년대 초 바이로이트에 청년 지휘자로 등장했던 때와는 다른 의미에서 다시금 바그너 지휘자로서 그의 활약상을 보여 주기 시작한 것이다. 1983년 바그너 사후 1백 년이 되던 해 뮌헨 음악제에서 그가 지휘한 바그너 전곡 상연도 그랬지만 무엇보다도 바그너 지휘자로서 그의 정점을 과시한 것은 니콜라우스 렌호프(Nikolaus Lehnhoff)의 충격적인 연출로 화제를 모았던 1987년 「니벨룽겐의 반지」 무대였다.
이색적인 연출이 특히 강조되었던 이 「니벨룽겐의 반지」의 최대 수확은 70년대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 연주의 음악적 수준이 저하된 것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자발리쉬 음악이 질적으로 향상된 것이었다. 물론 '80년대의 브륀힐데'로 불리던 힐데가르트 베렌스(Hildegard Behrens, 1937~2009)와 지크프리트를 노래한 르네 콜로(René Kollo, 1937~ )의 멋진 가창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지만.
연출이 강요하는 연주와 노래의 악조건을 감싸 주는 오케스트라의 안정되고 유연한 음향, 고전적인 바그너의 연주 스타일과는 확연히 구분되면서도 어김없이 우리들의 귀를 울리는 무한선율(음의 흐름이 끊임없이 유동하면 스스로 발전해 나가는 음악 형식)의 효과, 그리고 가수와 오케스트라의 자연스러운 조화, 이러한 것들이 자발리쉬가 바그너 지휘자 중에서도 일인자임을, 그리고 카를 뵘(Karl Böhm, 1894~ 1981)이나 오이겐 요훔(Eugen Jochum, 1902~1987)이 세상을 떠난 후 독일 · 오스트리아의 지휘 전통을 계승한 유일한 <거장>이 되었음을 분명히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https://youtu.be/0gBNBEbYKMc?si=L098JG6ykVlXliuK
https://youtu.be/CAwnw-Ut0mU?si=J9faiSep7IgEzAVc
Transparent form and inner sympathy of melody, Maestro of German and Austrian tradition
Around 1965, a young conductor with a noticeably neat face appeared in a program pamphlet at a concert. It was Sawallisch. His conduction was Beethoven's Symphony No. 7. Just like his appearance, he conducted the music with a neat and gentle appearance. At that time, the audience was accustomed to the extremely traditional and dignified performance style that seemed to be overwhelming. The traditional German style of designing the whole music was also popular for conducting movements. In contrast to that style, Sawallisch's conducting was new to remind us that a new sense of era was emerging in Germany. However, there is something about his music beyond such a neat and gentle appearance. It is the transparency of form, the dynamic rhythm, and the rhythm that the music emits itself. It goes well with Beethoven's Symphony No. 7, and Sawallisch's performance that day was a prominent performance among concerts at that time.
It can be said that the characteristic of Sawallisch's performance during this period lies in the transparency and sense of rhythm of this form. Among the live Bayreuth recordings released by Phillips around the same time, such characteristics can also be felt in Wagner's performance of The Wandering Dutchman and Tanhouser conducted by Sawallisch. Sawallisch's music, which pulls the whole thing together with a fast tempo that feels unfamiliar, was also a typical example of Wagner's "post-mystification", which appeared in the Sin-Biroit style of Wiland Wagner(director Wagner, who was well known for his symbolic directing from 1917~1966).
Entering the 1970s, Sawallisch gave a surprise from a different angle than before. This was also a time when he faithfully built his career as an opera conductor as the general music director of the Bayerische Staatsoper. At that time, he appeared in a talk program and played Schumann's song on his own piano (from this time on, Sawallisch was working as a ret accompaniment pianist). What surprised the viewers at that time was the rich heart of Sawallisch who expressed the song. It made me realize that singing and inner sympathy for the melody exist in a clear form in Sawallisch. From then on, Sawallisch's whole music changed the element of "singing". Perhaps within Sawallisch, "Youth" ended, and the periods of "maturity" and "harvest" began from this time.
The performance of Sawallisch, which is impressive after that, is often a large-scale vocal music that was put on the stage. Aside from Beethoven's Symphony No. 9, there are "Missa Solemnis" and Mendelssohn's oratorio "Elijah". In subsequent performances, Sawallisch is stabilizing the dignity of music by combining the transparency of form or rhythm and the abundance of "singing" with the rhythm, and opening the state of integration without contradiction by flexibly expanding the echo and framing of music. The way he conducts himself also took a step further from neatness and became heated.
Sawallisch was growing into one of the representative conductors in Germany, where the great conductors disappeared, by opening up the possibility of a new area of "singing music" without sacrificing the characteristics of his music in his youth. This is also because Sawallisch discovered "singing music" and learned the sense of framing that German great conductors, Furtwängler and Knappertsbusch had.
This sense of frasing is important. By that sense, Sawallisch began to show his performance as a Wagner conductor again in a different sense from the time when he appeared as a young conductor in Bayreuth in the early 1960s. It was the same with the performance of Wagner's entire songs at the Munich Music Festival, which marked the 100th anniversary of Wagner's death in 1983, but above all, what showed off his peak as a Wagner conductor was the 1987 "Ring of Nibelungen," which drew attention with the shocking direction of Nikolaus Lehhoff.
The greatest harvest of "The Ring of Nibelungen," where exotic production was particularly emphasized, was the qualitative improvement of Sawallisch music, in contrast to the decline in the musical level of Wagner's performance in Bayreuth in the 70s. Of course, the wonderful singing of Hildegard Behrens(1937-2009), who was called Brünnehilde of the 80s, and René Kollo(1937~), who sang Ziegfried, are also indispensable.
The orchestra's stable and flexible sound that embraces the musical conditions of the performance and song forced by the director, the effect of the infinite melody (a musical form that develops on its own when the sound flow is constantly flowing), and the natural harmony between the singer and the orchestra, which clearly proves that Sawallisch is the best among Wagner's conductors, and that after Karl Böhm(1894~1981) and Eugen Jochum(1902~1987) passed away, he became the only "living maestro" to inherit the German and Austrian conducting tradition.
2024.01.30 - [Music Story/지휘자와 오케스트라] - 오트마 슈위트너(Otmar Suitner, 1922~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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