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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좋은 글 나눔319

일 밖에서 일 속으로 사람이 어떤 일을 논의할 때는 일 밖에 서서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의 관계를 정확히 알아야 하고, 사람이 일을 맡았을 때에는 일 속으로 들어가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에 대한 생각을 잊어야 한다. 일 속으로 들어가라 - 한용운의 《채근담》중에서 - ​ * 일을 하면서도 일 밖에서 빙빙 도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일인데도 남의 일처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을 할 때는 일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야 합니다. 일을 놀이처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일에서 독보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일이 행복입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2018. 3. 30.
돼지 저금통 ​​한 개의 촛불로 많은 촛불에 불을 붙여도 처음의 촛불의 빛은 약해지지 않는다. *-탈무드. 미국 캔자스 주의 작은 마을에 채프먼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의 아들 윌버가 자신에게 용돈을 보내주는 탄넬 씨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탄넬 아저씨! 그동안 저에게 용돈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희 마을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많아요. 저는 아저씨가 준 3달러로 새끼돼지를 사서 키우고 싶어요. 이 돼지를 팔아 한센병 환자 가족들을 도와야겠습니다. 저도 앞으로 아저씨처럼 누군가를 돕고 싶어요." 이후 윌버는 돼지 새끼를 사서 열심히 키웠고, 마을의 또래 아이들도 덩달아 돼지를 키웠습니다. 윌버의 새끼돼지는 살이 포동포동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돼지를 팔아 한센병 환자 가족을 도왔.. 2018. 3. 27.
허물을 덮어 주세요. 어느 화가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초상화를 부탁받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대왕의 이마에는 추하기 짝이 없는 상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가는 대왕의 상처를 그대로 화폭에 담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왕의 자랑스러움에 손상을 입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처를 그리지 않는다면 그 초상화는 진실한 것이 되지 못하므로 화가 자신의 신망은 여지없이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화가는 고민 끝에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대왕이 이마에 손을 대고 쉬고 있는 모습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타인의 상처를 보셨습니까? 그의 허물을 가려 줄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합니다. ​ ✱-경북 경주의 작은 마을에, 어린아이가 한 명 살고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 2018. 3. 26.
사랑의 자양분 처음 사랑이 시작될 때는 오직 나와 상대 둘만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참 사랑을 한다면 사랑이 자라나고 확장되어 우리 모두를 포함하게 됩니다. 사랑이 성장을 멈추는 순간, 그 사랑은 죽기 시작합니다. 나무도 그렇지요. 나무가 성장을 멈추는 순간, 이미 죽음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랑에 자양분을 주는 법을 배운다면 사랑이 계속 자라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 틱낫한의 《사랑 명상 How To Love》 중에서 - ​ * 사랑도 자라납니다. 자양분이 있어야 자라납니다. 사랑의 자양분은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참 사랑, 진실된 사랑, 진정한 사랑, 그 사랑을 먹고 성장합니다. 아름답게 성숙됩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2018. 3. 26.
소란스러운 클래식 공연 ​​나는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고, 당신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함께라면 우리는 멋진 일을 할 수 있다. *- 마더 테레사. 모차르트나 엘가 등 고전 음악의 거장들이 작곡한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지는 공연장입니다. 그런데 울고 웃고 떠드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통로를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보입니다. 버릇없는 아이들과 방관하는 부모들을 탓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관람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연주자도 관객도 모두 미소 지으면서 공연을 즐기고 있습니다. 2017년 7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에서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동이 공연 도중 비명을 질러 아이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공연장을 떠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공연 이후 자폐아의 .. 2018. 3. 25.
용서할 준비가 되었는가? “만일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평화와 화해를 위하여 정직한 기도를 바칠 수 있겠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 베드로가 질문합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줘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용서 하면 될까요?” 예수님이 답합니다. “일곱 번뿐만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해야 한다.” 베드로는 용서에도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일곱 번이나 용서하면 최대한 용서한 것이라 합니다. 일곱 번을 용서해줬는데도 상대가 뉘우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용서하는 데는 한계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곱 번만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2018.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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