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사무엘하 6장 16절)
다윗과 그의 찬양대가 하나님의 궤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며 찬양하는데 이에 대하여 냉담한 반응을 보이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사울의 딸이요 다윗의 첫번째 아내인 미갈이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그녀가 다윗의 아내로 소개되지 않고 사울의 딸 미갈로 소개되었다. 이렇게 표현한 것은 그녀가 다윗을 업신여기에 된 배경을 암시하기 위함일 것으로 보인다. 즉 미갈은 언약궤를 함부로 다루었던 그 아비 사울(대상 13:3)의 영향을 받아 다윗이 신앙적 열정으로 하나님의 궤 앞에서 춤추고, 백성들과 같이 겸비한 자세를 취한 것을 왕의 체면과 품위를 훼손시킨 것으로 간주하고 그를 업신여긴 것이다. 사실 하나님보다 일개 왕을 더 높이 여겼던 미갈의 눈으로 볼 때, 다윗이 일반적으로 축제 때 영인들이 담당했던 춤을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추고 왕복 대신 베옷을 입었다는 건은 말할 수 없는 수치의 철부지 행동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의 남편이 채신머리없이 논다고 생각했다. 왕으로서의 체면과 위엄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갈은 자기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고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가족을 축복하러 오는 다윗에게 말했다.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가로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 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삼하 6:20)
여기서 '방탕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크'는 헬라어 '라가'에 해당하는 말로, 본래 미덕이나 덕망 그리고 재산 등이 없어 '속이 빈'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에 대하여 최대의 경멸과 철저한 무가치를 표현하고자 할 때 '레크'를 사용했다.
미갈의 말은 다윗을 비꼬고 있다. 가족을 축복하러 오는 다윗에게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이다. 자기를 축복하러 오는 다윗에게, 땀을 흘리며 큰일을 치루고 돌아오는 남편에게 위로의 말 한 마디도 없이 조롱과 비난의 말을 퍼부었다. 이것은 축복의 길을 스스로 막는 행위요, 사랑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자멸의 언행이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찌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삼하 6:21 - 22)
다윗은 자기의 행위가 사람 앞에서 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한 행위임을 분명히 하였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목숨을 노리던 사울을 물리쳐주신 그 은혜를 잊지 않았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는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겸손한 마음이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찬양의 역사를 방해하는 요소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미갈의 잘못은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 찬양할 때 함께 동참하지 않은 데 이따.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까지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웃사를 쳐 죽게 하셨듯이 이번에는 자기의 남편을 쳐 죽게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만약 이에 대하여 마음을 졸이고 기도하고 있었다면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에 들어올 때 얼마나 기뻤을까? 자신이 오벧에돔의 집까지는 함께 가지 못했다 할지라도 성으로 무사히 돌아오는 남편을 기쁨으로 뛰어나가 맞이해야 했다.
홍해를 건넌 후 기쁨을 이기지 못한 여인들은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함께 소고를 치며 춤을 추지 않았던가? 암몬 족속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입다를 그의 딸은 소고를 잡고 춤추며 영접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미갈은 자기의 남편이 무사히 돌아올 때 '창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이것은 미갈의 교만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는 너와 다르다. 나의 집안은 너의 집안과 다르다. 나의 형통은 너의 혈통과 다르다. 나는 너와 함께 할 수 없다.' 이러한 교만이 그녀의 마음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왕인 아버지 사울의 딸로 특권계급을 누리던 사람이었다. 그녀의 교만한 마음은 그의 아비 사울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녀의 교만은 그녀를 왕궁에서 나오게 하는 데 방해요인이 되었고 온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노래하는 데 참여하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오랜동안 찬양대의 지휘자로 생활을 하고 있다. 찬양대에서 좀 재능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교만한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찬양대에서는 노래를 못하는 사람보다도 교만한 사람들이 제일 지휘자의 속을 괴롭게 한다. 그들은 대부분 여러 사람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합창을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솔로(solo)하기를 좋아합니다. 소위 '특송'을 통하여 홀로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여러분에게 솔로보다는 합창을 통하여 하나님께 찬양드리기에 힘쓰라고 권하고 싶다.
세상의 마지막에 대한 기록인 요한계시록에는 땅ㅇ에서는 무서운 심판이 계속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끊임없이 찬송이 흘러나온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이 찬송에 우리가 장차 참여하게 될 터인데 요한계시록의 찬송, 즉 하늘의 찬송에는 한번도 솔로로 찬송하는 장면이 없다. 하늘 찬송에서 번번히 쓰이는 단어는 '허다한 무리가' '큰 음성들이' '많은 무리가' '십사만 사천이' '많은 천사의 음성이' 등이다. 여기에 혼자 노래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솔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다른 곳에서 찬양(?)을 하게 되는 것 같다.
-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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