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usic Story/성경 속의 음악

다윗의 실패

by 정마에Zeongmae 2018. 7. 7.
728x90
반응형


   "다윗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사무엘하 6장 5절)


   사무엘하 6:5의 말씀은 예배의식으로서의 첫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이 말씀은 처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오케스트라가 사용된 것을 알려주는 구절이다. 역대상 13:8에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니라."

   여기서  '연주하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하크(שהק)'는 본래 '연주하다', '춤추다', 뛰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연주하더라'는 말은 단순히 악기를 연주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연주에 맞추어 즐겁게 춤추며 노래하며 뛰노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역대기 기자는 이 부분을 언급하면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온 정성과 힘을 다해야 할 것을 교훈한다.

   역대상에는 사무엘서의 양금이 빠지고 나팔이 들어가 있다. '양금'은 원어 '메나네임(מנענעים)'의 번역으로 '떨다, 떨리다, 흔들다'라는 뜻의 '누아(בןע)'에서 나온 말이다. 이 악기는 현대의 '탬버린'에서 가죽을 떼어낸 것과 비슷한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보통은 손잡이가 따로 있고 틀이 있으며 그 틀 사이에 철로된 막대기를 고정시켰고 그 철 막대기에는 찰찰거리며 소리를 낼 수 있는 양철 판들이 달려 있다.  



   미쉬나의 기록에는 이 악기의 소리를 울부짓는 여인의 악기라고 표현하였는데 환희와 깊은 슬픔 등의 극단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쓰인 악기이다. 성경에서는 오직 사무엘하 6:5에만 한 번 나타난다.


    '제금'으로 번역된 '첼츨림'은 둥근 청동판으로 만든 한 쌍의 심벌즈를 말한다. 이 악기는 대부분 나팔과 수금 등 하나님을 찬양하는 악기와 함께 사용하는 타악기이다. 미쉬나에 의하면 그 소리가 매우 강하여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까지 들렸다고 한다. 이 악기는 타악기이지만 리듬을 연주하는 드럼의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다. 구약에서는 오직 제사장 계급의 남자만 연주할 수 있는 의식용 악기이며 예배의식에서는 특히 그 연주의 지휘자가 사용한 것으로 보아[각주:1] 제금의 사용은 경건하며 중요하게 사용되었던 것 같다.

   지휘자들이 사용한 이 악기는 음악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는 우리나라의 '박'과 같은 역할을 했으며, 곡의 절정부분에서는 극적인 효과를 내며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것이었다. 성전 오케스트라에서는 3개 이상의 첼츨림을 사용하였다. 



   심벌은 음악의 극적인 부분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 준다. 두 청동판이 충돌하여 만들어내는 음향은 맥이 빠지고 힘이 없는 음악을 생동감 있게 만들어 주고 축 쳐져 있는 사람들을 각성시키고 기운나게 만든다.


   다윗 왕이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며 등장시킨 찬양대는 노래만 하는 찬양대가 아니라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가 함께 하는 멋진 찬양대였다. 타악기와 춤과 어우러진 다양한 악기들은 확실히 효과 있는 혼합체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역사는 그들이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나타났다.

   "저희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삼하 6:6-7)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고 웃사를 치셨다. 다윗 왕은 놀라서 하나님의 궤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궤를 옮기는 대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궤를 옮겼다. 모든 악기를 동원하고 힘을 다해 한 찬양이 모두 헛일이 되었다.

   다윗 왕의 궤 앞에서의 첫 예배는 실패로 끝났다. 어떻게 있는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했는데 이러한 끔찍한 결과로 끝날 수 있었는가? 무조건 내가 열심히 한다고 그것이 좋은 결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원칙을 무시한 자기 식의 열심은 위험할 수도 있다.

   다윗은 자신의 방식대로 궤를 예루살렘까지 가져오려 했다. 그는 이 일을 위하여 새 수레를 준비하고 오케스트라까지 대동하여 그 깊은 산골까지 찾아갔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다.

   민수기 4:15에는 어떻게 누가 궤를 운반할 것인지에 대해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가르치셨다. "진영을 떠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일을 마치거든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

   하나님의 궤는 짐승의 어깨에 메어서 운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어깨에 메고 운반해야 한다. 우리가 편리한 방식으로 운반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인본주의적인 방법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도 인본주의적인 찬양이 되면 그것은 이미 찬양이 아니다.

   교회에서 잘 차린 옷을 입고 거룩해 보이는 얼굴로 열심히 찬양한다도 해도 그것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내 방식과 나 중심으로의 찬양이라면 그것은 이미 찬양이 아니라 세속적인 연주에 불과하다.

  

  1. 아삽, 헤만, 여두둔과 같은 지휘자가 사용하였다. [본문으로]
728x90
반응형

'Music Story > 성경 속의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갈의 실수 - 찬양에 대한 잘못된 태도 1.  (0) 2018.09.01
다윗의 성공  (0) 2018.07.30
요압의 나팔 1  (0) 2018.05.19
다윗의 애가(哀哥) "활 노래"  (0) 2018.05.12
히브리인의 성악음악 2  (0) 2018.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