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사무엘하 6장 12절~15절)
앞 단락에서는 율법에 규정되어 있는 방법대로 행하지 않은 탓에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 한 다윗의 첫번째 시도가 그만 무산되고 말았음을 보았다(1~11절). 그에 이은 본문은 그때로부터 3개월 후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기려는 재시도가 서공하여 마침내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오는 장면이다.
첫번째 실패 하였을 때에는 제사를 드렸다는 말이 없다. 그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궤를 대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와의 인격적인 관계가 먼저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갖는 방법이 '제사(sacrifice)'이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없이 그저 복만을 구하는 신앙을 기복신앙이라고 한다. 복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의한 경과인 것이지 우리 신앙의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께 대한 찬송과 세속적인 연주의 다른 점은 '제사'에 있다. 우리는 구약시대처럼 소와 양을 잡아 제사할 필요는 없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십자가에서 자신을 드려 제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제사를 드리고 찬양해야 한다. 내 자신을 온전히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우리 주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내 자신이 온전히 벗겨지고 각이 떠져서 하나님께 바쳐진 후에 우리의 찬양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찬양이 될 것이다. 내 자신이 산 제사로 마쳐지는 것이 우리의 드릴 영적 예배요, 영적 찬양인 것이다.
두번째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올 때는 다윗이 하나님의 율법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궤를 운반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한번도 어떻게 찬양을 하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
첫번째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악기를 어떻게 편성하여 어떤 방식으로 찬양하라고 지시하신 적이 없으시다. 다윗뿐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지시하신 적이 없으시다.
여리고 성 정복 때의 나팔에 관한 명령이나 광야 시절 은나팔 '카초츠라'에 관한 명령(민 1:1~10)은 음악적인 찬양이라기보다는 전쟁과 신호로서의 지시였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궤의 운반에 있어서는 웃사를 쳐 죽이실 만큼 엄격하셨다. 즉 이미 말씀하신 명령에 대하여는 변칙적인 방법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원칙에는 엄하셨지만 그 외의 것에난 엄청난 자유를 허용하셨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 자녀가 행하여야 할 원칙에 속하는 일이지만 그 찬양을 하는 방법은 우리의 자유에 온전히 맡기셨다.
하나님의 궤를 운반할 때 하나님을 찬송하는 방법은 온전히 다윗에게서 나온 명령이다.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였는가? 사무엘서의 기록은 다윗의 찬송 태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다윗은 왕으로서가 아니라 주를 섬기는 종의 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궤 앞에서 겸손히 찬양을 하였다. 겸손히, 그러나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 다윗의 춤이 어떤 춤이었는지 확실치 않다. 어떤 형식이나 격식을 갖추지 않은 자연스런 춤일 것으로 추측된다.
춤은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기쁨과 관련하여 나타난다(출 15:20, 마 11:17, 눅 7:32). 따라서 다윗이 법궤를 운반할 때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는 것은 그의 신앙적 열정과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길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적 기쁨을 반영해 준다.
다윗은 너무 기쁜 나머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표출 되었을 것이다. 왕으로서의 체통이나 백성들에 대한 의식은 전혀 없었다. 자의식이나 체면의 자색 왕복은 이미 벗어버렸기 때문이다. 다윗은 오직 '여호와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찬송이 극에 달하였을 때에 그는 오직 하나님만 보였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그의 마음과 힘과 정성을 모아 찬양하였다. 놀라운 집중력을 보인다.
찬양은 하나님께 대한 집중력이 있어야 한다. 세속적인 음악가들 처럼 음악에 집중할 때 우리는 감정의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찬양자로서 하나님께 집중할 때 우리는 감정을 넘어선 영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다. 감정의 카타르시스는 마치 포도주에 취하는 것 같은 일시적인 정화작용이지만 영적 카타르시스는 일시적이 아닌 영원한 것이며 우리의 영성이 자라나는 성화과정(sanctification)을 돕는다.
'Music Story > 성경 속의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갈의 실수 - 찬양에 대한 잘못된 태도 2 (0) | 2018.09.08 |
---|---|
미갈의 실수 - 찬양에 대한 잘못된 태도 1. (0) | 2018.09.01 |
다윗의 실패 (0) | 2018.07.07 |
요압의 나팔 1 (0) | 2018.05.19 |
다윗의 애가(哀哥) "활 노래" (0) | 2018.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