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협주양식과 극음악이 포교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간파한 로마교회는 1600년 경에 생긴 오페라의 눈부신 성공을 즉시 유효하게 활용했다. 몬테베르디나 피렌체의 작곡가들의 고전적인 신화와 드라마에 바탕을 둔 오페라의 착상은 로마에서는 교훈적, 가톨릭적 경향을 가지는 풍자극이나 종교극으로 변형된다. 이렇듯이 이른바 세례를 받게 된 오페라가 오라토리오인 것이다.
그 이전의 더욱 미숙한 오라토리오 형식은 팔레스트리나의 친구였던 로마의 성 필립보 네리의 시대까지 약 반세기나 거슬러 올라간다. 1552년 경 성 필립보 네리는 어느 수도원의 기도처(이탈리아에서는 "oratorio"라고 부른다)에서 신자들의 교화를 위한 집회를 열었다. 그리고 반종교개혁의 운동은 이 새로운 행사를 지지하고, 1575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이 모임을 Congregazione dell' Oratorio(오라토리오회)라고 불러 이를 공식 승인했다. 그것은 가톨릭 포교의 한 기관이며 평수도자의 교육을 위한 조직이었다. 이후 오라토리오가 음악용어로 정착된 것은 오라토리오 모임에서 성경을 감동적으로 느끼기 위해 신비극을 공연하고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1600년에 카치니와 페리에 의해서 만들어진 최초의 오페라 "에우리디체"(Euridice)가 피렌체에서 상연되자 로마교회는 곧 이 새로운 착상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이것을 교회의 목적에 이용했다. 그래서 같은 해에 일종의 도덕적인 우화극 "영혼과 육체의 묘사"(La Rappresentazione di anima e di corpo)가 네리의 오라토리오에서 상연되었다. 작곡가는 에밀리오 데 카발리에리(Emilio de' Cavalieri, c.1550 – 1602)였다. 그는 오랫동안 발리첼라의 산타 마리아성당에서 「오라토리오회」의 특별한 모임을 위한 음악의 작곡과 연주에 종사하고 있었다. 또한 이 곡은 오라토리오(기도처)라는 용어의 기묘한 오해로 말미암아 일반적으로 최초의 오라토리오라고 불리어져 있다.
17세기의 오라토리오는 최초의 오페라와 거의 구별할 수 없는 우의적(寓意的)인 종교극에서부터 오늘날 우리들이 보통 오라토리오라고 부르는 것으로 바뀌어 갔다. 아무튼 가톨릭 교회는 이것을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그 후 오랫동안 오라토리오는 전적으로 가톨릭적 예술로서 번영해 갔던 것이다.
약 125년이 넘는 기간에 오라토리오는 음악에 있어서의 제수이트 스타일이며 로마 가톨릭 교회는 애써 이것을 육성하고 보급했다.
17세기에 있어서 라틴어 오라토리오와 이탈리아 오라토리오 양쪽은 근대음악의 발전을 위한 매우 중대한 수많은 새로운 형식이나 새로운 음악적 효과의 풍부한 그릇이 되었다. 오라토리오는 모테트, 빌라넬라, 마드리갈, 칸초네타와 같은 옛 합창형식 외에도 여러 종류의 아리아, 칸타타, 콘체르토, 푸가 등의 독창, 합창 및 관현악의 새로운 형식을 이용했다.
또한 오라토리오는 주제의 풍부함과 흥미 있는 다양성으로 말미암아 오페라와 우열을 다투게끔 되었다. 주제에 있어서는 중세의 신화극의 계승이라 하겠으며, 여러 성인의 전설 등을 취급했다.
보통 오라토리오는 중간에 설교를 삽입시키는 두 개의 부분을 가지고 있다. 이 형태는 역사적으로 몇 가지의 변화과정을 겪어서 처음의 종교적인 오페라의 형태에서 나중에는 해설자(testo, evangelist)가 등장하는 반 극적(半 劇的)인 작품형식으로 옮겨간다. 이 해설자의 등장은 훨씬 뒤 바흐의 수난곡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예술적으로 보아 흥미 깊은 것은 로마의 대가 카리시미 악파의 라틴어 오라토리오인데, 이 악파는 주로 표현의 수단으로써 특히 합창을 중시했다. 이 형식의 오라토리오의 양식과 수법은 20세기 스트라빈스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일종의 오라토리오와 오페라의 중간적 성격으로 묶어진 매우 근대화된 형태로서 부활되었다. 그러나 오라토리오는 위대한 프로테스탄트의 대가들, 특히 헨델 이후에 비로소 예술적 정점에 도달하며 최대의 대중성을 가지게 되었다.
https://youtu.be/kNBPPkdkqlE?si=Fey9RJv3Td9BzApf
Knowing that new concertos and dramatic music were helpful for missionary activities, the Roman Church immediately utilized the remarkable success of opera around 1600. The idea of opera based on classical myths and dramas of Monteverdi and Florentine composers is transformed into satirical or religious dramas with instructive and Catholic tendencies in Rome. In this way, the opera that was baptized is the oratorio.
The earlier, more inexperienced oratorio style dates back about half a century to the time of St. Philip Neri of Rome, who was a friend of the Palestinians. Around 1552, St. Philip Neri held a rally for the edification of the faithful at a monastery (called "oratorio" in Italy). And the movement of the Counter Reformation supported this new event, and in 1575, Pope Gregory XIII called the Congregazione del' Oratorio and officially approved it. It was an organization of Catholic missionary education. The oratorio was later established as a musical term because the oratorio performed and sang sacred tragedies to impress the Bible at the oratorio gathering.
When the first opera "Euridice," created by Caccini and Perrier, was performed in Florence in 1600, the Roman Church soon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this new idea and took advantage of it for church purposes. So in the same year, a kind of moral allegory, La Raprestentazione di anima e di coronpo, was performed at Neri's oratorio. The composer was Emilio de' Cavalieri (c.1550 – 1602). He had long been engaged in the composition and performance of music for a special gathering of the "Oratorio" at Santa Maria Cathedral in Valicella. It is also commonly called the first oratorio due to a strange misunderstanding of the term oratorio.
The oratorio in the 17th century changed from an allegorical religious play that was almost indistinguishable from the first opera to what we usually call the oratorio today. In any case, the Catholic Church made it completely its own, and the oratorio flourished entirely as Catholic art for a long time.
Over a period of over 125 years, the oratorio is a Jesuit style in music, and the Roman Catholic Church has struggled to foster and disseminate it.
In the 17th century, both the Latin oratorio and the Italian oratorio became a rich vessel of very significant new forms or new musical effects for the development of modern music. In addition to the old choral forms such as motet, villanella, madrigal, and cantonetta, the oratorio used new forms of solo, choral, and orchestral music such as several types of aria, cantata, concerto, and fugue.
In addition, the oratorio's richness and interesting diversity of themes made it compete for superiority and inferiority with opera. In terms of themes, it is said to be the succession of medieval mythical plays, and it treated the legends of several saints.
Usually, an oratorio has two parts that insert a sermon in the middle. This form has historically undergone several changes and moves from the first religious opera form to a semi-dramatic form of work that later features a narrator (testo, evangelist). This narrator's appearance can be seen in Bach's Passion much later.
Especially interesting artistically, the Latin oratorio of the Karisimi School, the master of Rome, which placed particular importance on chorus as a means of expression. The style and method of this form of oratorio was revived in Stravinsky's "Oedipus Rex" in the 20th century as a very modernized form grouped into a kind of intermediate character between an oratorio and an opera. However, the oratorio reached its greatest popularity only after the great Protestant masters, especially Han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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