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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서양음악사

17세기 독일음악의 풍토 1(The climate of German music in the 17th century 1)

by 정마에Zeongmae 2024.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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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개혁이 시작된 뒤 약 80년 동안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뜻에 위반되는 모든 문화적 발전에 대한 적대적 생각과 종교문제에 대한 불관용(不寬容)의 태도는 정점에 이르고, 마침내 1600년에 뛰어난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는 자기의 철학을 교회의 뜻에 종속시키는 것을 거절했다는 이유 때문에 나보나광장에서 화형을 당했다.

 
    이 종교적 광포(狂暴)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두 진영을 자극시켰다. 그래서 지배권을 지향해서 양편의 싸움은 마침내 독일에 있어서 30년전쟁(1518~1648)을 일으켰는데, 이 전쟁은 독일로서는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여러 면에 걸쳐 다년간의 피폐를 초래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비참한 싸움은 독일의 거의 모든 지방을 황폐시켰고 빈곤케 했을 뿐 아니라, 번성한 문화를 파괴했으며 또한 전통을 중지시키고 젊은 세대로부터 충분한 교육의 기회를 빼앗으므로써 예술의 발전을 방해했다.

    독일의 17세기는 처참한 예술 쇠퇴의 시대이다. 그러나 음악만은 예외였다. 이 예외는 일상생활의 비참함에 대한 단 하나의 위안과 버팀목으로서 종교와 종교음악에로 향한 대대의 프로테스탄트 교회음악가들의 활동 덕택이었다.

    1600년에서 1700년 사이에 주로 작센  튀링겐 지방의 이들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합창장과 오르가니스트들은 예술의 전통을 생생하게 보존하면서 한결같이 꾸밈없는 솔직한 창작활동으로써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성숙과 발전의 요지를 만들었다.

    이 세기 동안의 프로테스탄트 독일의 음악은 금세기의 방대한 출판물 "독일음악 기념집"(Denkmäler deutscher Tonkunst)을 통해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악보 출판의 위업은 수많은 뛰어난 음악학자의 협력을 얻어 대략 1900년 경부터 독일정부의 손으로써 계속되었다. 우리들은 이 덕택에 독일의 교회칸타타, 오르간과 피아노작품, 실내악, 모음곡, 소나타, 콘체르토 등의 발전을 편리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작곡의 모든 장르에는 당시의 이탈리아 바로크음악의 영향이 명백히 나타나 있지만, 또한 여기에 독일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이 혼합되어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교회칸타타와 오르간음악에 있어서는 독일은 이내 이탈리아의 지배권을 빼앗게 되었다.

    17세기 독일 음악의 대략 4분의 3은 작센 튀링겐의 좁은 지방에서 생겼으며, 이 지방은 그 뒤 19세기까지 독일 프로테스탄트음악의 문자 그대로의 고향이었다. 지리적으로 독일 중앙부에 있는 이 지방은 남부의 바바리아나 오스트리아에서도,  북부의 발틱해에서도 거의 같은 거리에 위치하며 북으로 향해서 흐르는 엘베와 베저 두 강 사이에 끼어 있다. 이 지방의 끝에서 끝까지 기차로는 3~4시간에 통과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은 한 지방이 실로 구석구석까지 음악적 추억이 넘쳐 있으며, 어느 도시도 독일 음악사에서 많든 적든 알려져 있다.

   플랑도르 지방과 북부·중부 이탈리아에 대해서도 이와 마찬가지의 것을 말할 수 있겠는데, 한 지방이 도대체 음악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지방에서 몇몇의 유명한 도시의 이름을 들면 충분할 것이다.

▲ 하인리히 쉬츠 (Heinrich Schütz, 1585~1672)

 
    먼저 당시 음악의 큰 중심지였던 드레스덴에서 음악여행을 시작하자. 이곳에서는 바흐 이전의 독일 교회음악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였던 하인리히 쉬츠가 유명한 작센궁정 예배당에서 약 60년간 앞장서서 활약했다. 그는 다른 분야에서는 저조했던 17세기 독일 문화를 음악면에서 혼자서 걸머지고 나선 장로이며, 논의할 여지없는 지휘자였다.

    젊은 시절에 베네치아에 가서 몬테베르디와 함께 조반니 가브리엘리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쉬츠는 베네치아에서 바로크음악의 원리를 체득하고 돌아왔다. 쉬츠는 이탈리아와 독일 양쪽 음악의 본질적인 특징을 융화시키는 뛰어난 재능을 지녀서, 그 안에서 새로운 생생하고도 힘찬 효과를 만들어 냈다.

    쉬츠의 작품 가운데는 옛 독일의 다성적 합창곡 스타일을 계승한 것도 있지만, 거기에 덧붙여서 새로운 이탈리아의 음악과 바로크 극음악의 여러 경향, 몬테베르디의 음색효과의 시도, 베네치아와 로마의 복합창양식, 새로운 오케스트라의 기법, 협주양식, 칸타타 등을 도입해서, 언제나 뛰어나고 교묘한 수법으로써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이 융합되어 있다.

    바흐의 유명한 전기작가인 필립 스피타(Philipp Spitta)가 편찬한 훌륭한 전집판이 나와있는 쉬츠의 음악은 오늘날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것을 연주하는 것은 충분히 애쓰는 보람 있는 일이다. 그의 음악 대부분은 일류의 대가조차 좀처럼 도달할 수 없는 숭고한 영감과 완벽한 수법에 가득 찬 최고의 종교예술이기 때문이다.

2024.02.08 - [Music Story/서양음악사] - 오라토리오의 발생(Occurrence of Oratorio)

오라토리오의 발생(Occurrence of Oratorio)

새로운 협주양식과 극음악이 포교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간파한 로마교회는 1600년 경에 생긴 오페라의 눈부신 성공을 즉시 유효하게 활용했다. 몬테베르디나 피렌체의 작곡가들의 고전적

zeong.tistory.com

 
https://youtu.be/eWHOZPCWAlg?si=zzenvSHHm097MQx-

 


 
    In the 80 years since the Protestant Reformation began, hostile thoughts on all cultural developments and intolerance of religious issues that violate the will of the Roman Catholic Church have peaked. Finally, in 1600, the brilliant philosopher Giordano Bruno was burned at the stake in Nabona Square for refusing to subordinate his philosophy to the will of the church.

    This religious frenzy provoked two camps: Catholicism and Protestantism. So the struggle for control finally led to the Thirty Years' War (1518-1648) for Germany, a major event that wreaked havoc on many aspects of politics, economy, culture, etc. Not only did the disastrous fight devastate and impoverish almost all of Germany's provinces, but it also hindered the development of art by destroying prosperous culture and disrupting tradition and depriving young generations of sufficient educational opportunities.

    Germany's 17th century was an era of disastrous art decline. However, music was the exception. This exception was due to the work of a large number of Protestant church musicians toward religion and religious music as a single comfort and support for the misery of daily life.

    Between 1600 and 1700, choristers and organists of these Protestant churches, mainly in Thuringia, Saxony, created the gist of Johann Sebastian Bach's maturity and development through consistently unvarnished and candid creative activities, preserving the tradition of art vividly.

    Protestant German music during this century is widely known through the vast publication of this century, the "Collection of German Music" (Denkmäler deutscher Tonkunst). The feat of publishing this score has been continued at the hands of the German government since about 1900, with the cooperation of numerous outstanding musicologists. We can conveniently see the development of German church cantatas, organ and piano works, chamber music, collections, sonatas, and concertos thanks to this.

    The influence of Italian baroque music at the time is evident in all genres of composition, but it cannot be denied that the spirit of the German Protestant is mixed. Germany soon took control of Italy, especially when it comes to church cantata and organ music.
     Approximately three-quarters of German music in the 17th century came from a small region in Thuringia, Saxony, which until the following 19th century was the literal home of German Protestant music. Geographically, this region in central Germany is located about the same distance between Bavaria and Austria in the south and the Baltic Sea in the north and is sandwiched between two rivers, Elbe and Bezer, which flow northward. It takes three to four hours by train from end to end in this region. However, this small region is truly full of musical memories in every corner of German music history, and any city is known in many ways.

    The same can be said of the Flanders and northern and central Italy, and it would be sufficient to name several famous cities in the region to understand what it means to say that a province is musical.

    First, let's start our music trip in Dresden, the great center of music at the time. Heinrich Schütz, the greatest composer of German church music before Bach, led the famous Saxon court chapel for about 60 years. He was an elder and undisputed conductor who single-handedly straddled 17th-century German culture, which had been poor in other fields.

    Schütz went to Venice in his youth and learned the principles of baroque music from Giovanni Gabrieli with Monteverdi, and returned to Venice. Schütz created a new vivid and powerful effect in both Italian and German music because of his outstanding talent for harmonizing the essential features of both Italian and German music.

    Some of Schütz's works inherit the style of old German polyphonic choruses, but in addition, new Italian music and baroque dramatics, Monteverdi's attempts at tonal effects, Venetian and Roman compositions, new orchestra techniques, concertos, and cantatas are introduced, and the new and old are always fused with excellent and clever techniques.

    Schütz's music, which has a great compilation compiled by Bach's famous biographer, Philipp Spitta, is little known today, but playing it is rewarding enough to struggle. This is because most of his music is the best religious art, filled with sublime inspiration and perfect techniques that even the masters of the first class can hardly r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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