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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식2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의 역사 3 고려교향악단의 창단 후 1년쯤 지나 동 악단의 총무였던 김생려를 비롯한 20여명의 단원이 고려교향악단을 그만두고 새로운 오케스트라를 조기하게 되는데 이것이 서울관현악단이다. 그 후 고려교향악단이 제 26회 정기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체되자 그 단원들을 흡수하여 서울교향악단으로 재출발한다. 이 서울교향악단은 40여명의 단원으로 시작했으며, 첫 지휘를 김생려가 맡아 인천문화회관에서 1947년 7월 30일~31일 제 1회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이 때 연주한 곡은 김성태의 ‘카프리치오’와 비제의 ‘카르멘 모음곡’이었다. 제2회 공연은 김준덕의 지휘로 베토벤의 〈교향곡 제8번〉등 베토벤의 작품 만으로 꾸몄다. ▲ 지휘자 김생려 서울교향악단은 KBS와 전속 계약을 맺고 방송국 스튜디오를 연습 공간으로 사용하며 13명.. 2018. 11. 3.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의 역사 2 곡호대군악대, 이왕직양악대, 경성악대로 이어지는 악대는 분명 우리나라 오케스트라 발전사에서 하나의 씨앗이 됨은 분명하다. 그러나 1930년경까지 가까스로 명명을 이어온 이 단체는 취주악대의 범주를 넘어서지는 못 했다. 관악과 현악이 조화를 이루는 오케스트라는 숭실전문 관현악부와 보성전문 현악대에서 그 발전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숭실전문은 1910년경부터 합창부와 밴드부가 조직되어 선교사업의 일환으로 활동했고, 선교사들에 의해 현악도 발전을 이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아마추어 관현악단이 조직되어 있었다. 혹자에 따라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오케스트라로서 3.1운동 이전에 조직되었던 숭실전문의 이 관현악단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때까지 실내악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에 1926년 선교사였던.. 2018.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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