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기차 앞에 한 사람이 서있다. 그는 기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도, 고장 난 기차를 수리하는 정비사도 아니다. 바로 작곡가 '아르투르 오네게르Arthur Honegger'(스위스, 1892~1955)이다. 그는 기차를 무척 좋아했던 대표적인 음악가이다.
스위스인을 양친으로 하여 1892년에 프랑스 르아브르에서 태어난 오네게르는 음악을 좋아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피아노를 잘 치는 어머니와 함께 연주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음악 못지않게 꼬마 오네게르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배, 기차 같은 탈것이었다.
특히 항구 도시에서 자라서인지 여러 종류의 배를 일일이 구분할 정도로 배에 대해서 많이 알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라면 누구나 기차나 배를 좋아하지만, 오네게르의 특별한 관심은 자라면서도 계속되었다.
유능한 상인이었던 아버지는 오네게르가 자신의 일을 이어서 하기를 원했지만, 아들이 자신이 가진 재능인 음악을 하겠다는 열정과 고집에 두 손을 들게 된다.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한 오네게르는 여름마다 스위스 취리히에 사는 삼촌에게 갔는데 이는 그 도시에 있는 훌륭한 선생님들에게 음악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기차를 타고 며칠씩 걸려서 가야 하는 먼 거리였지만, 음악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정도 수고쯤은 감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오네게르는 기차 여행을 하면서 기차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커지게 되었다. 열아홉 살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한 오네게르는 바쁘게 음악원 생활을 하면서도 기차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 그래서 그는 틈나는 대로 기차역에 가서 오가는 기차들을 열심히 구경하곤 했다.
오네게르는 음악원을 졸업한 다음, 여러 작품을 발표하면서 작곡가로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오네게르는 자신만의 개성이 넘치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듣기에 아름답기만 한 음악이 아니라 힘이 느껴지는 음악이었다.
그 당시 기차는 증기의 힘으로 달리는 증기 기관차, 증기를 확 내뿜고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달리는 기차를 보면서 오네게르는 굉장한 힘을 느꼈고, 이런 기차를 생각하며 만들어진 음악이 바로 「퍼시픽 231 Pacific 231」인 것이다. 1923년 작품으로, 이듬해 쿠세비츠키가 파리에서 초연했고, 지휘자 에르네스트 앙세르메에게 헌정했다.
이 곡은 차체 중량 300톤이나 되는 거대한 기관차 ‘퍼시픽 231’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여, 차츰 속력을 늘려 마침내 시속 120마일로 질주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근대적인 남성미가 넘치는 음악이다.
증기기관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자동차, 비행기, 오토바이 등 많은 자동 운송기관들이 등장해서 이상할 것이 없지만, 고대와 중세에는 오직 생물만이 움직일 수 있고 생명이 없는 것은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이른바 물활론(hylozoism)이나 정령론(animism)은 이런 사고방식의 표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증기기관은 고대적 사고방식을 깨뜨린 혁신적인 발명이었다. 거대하고 육중한 증기기관차가 연기를 내뿜으면서 굉음을 지르며 질주하는 모습은 근대문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퍼시픽 231」에서 오네게르는 중기관차의 스피드와 강렬한 외침을 통해서 힘차고 강한 이미지를 묘사하였다. 이 곡에 대한 해설로써 작곡자 자신의 다음과 같은 설명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기관차를 정열적으로 사랑하였다. 나에게 있어 기관차는 살아있는 것이나 같은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여자나 말을 사랑하듯 나는 기관차를 사랑하였다. 이 곡에서 내가 나타내려고 한 것은 단순하게 기관차 소음의 모방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가시적인 인상과 하나의 육체적인 희열을 음악적으로 구성, 번역하려고 한 것이다.
그것은 객관적으로 명상에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서 있는 기관차의 조용한 숨결, 발차하려는 노력이어서 서정적인 상태, 즉 한밤중 한 시간에 1O마일을 달리는 300톤짜리 기관차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속력의 점진적인 속도이다. 나는 그 대상으로 231의 심볼인 "퍼시픽" 기관차를 택하였다. 그것은 높은 속력을 낼 수 있는 중기관차의 하나이다."
우리는 이 음악에서 증기기관차가 천천히 가속하는 모습을 들을 수 있다. 곡의 처음은 심벌즈로부터 시작된 뒤, 현악기들이 기적소리 비슷한 트레몰로를 덧붙이며 콘트라파곳과 호른이 서서히 발차를 위한 준비상황을 묘사한다. 드디어 튜바로 음이 상승하며 기차가 출발하기 시작한다. 파곳과 함께 느리게 시작된 뒤 점차 빨라지기 시작한다. 그 후 여러 악기가 더해진다. 트럼펫과 현악기들, 파곳 등에 의해서 분위기가 점차 자유롭게 진행된다.
피콜로와 플룻에 의한 급격하게 파고드는 듯한 소리는 달리는 기차의 기적소리를 묘사한다. 곡은 잠시 목관과 현에 의해서만 진행되다가 다시 격렬해지면서 클라이막스를 지나 서서히 완만해진다. 곡은 계속 진행되지만 아쉬움을 남기듯 6분이란 시간을 뒤로하고서 사라진다. 오네게르의 기차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생각하며 「퍼시픽 231」 을 들어본다면 심장이 쿵쿵거릴 정도로 빠른 속도와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오네게르에 대한 음악사적인 업적은 음악적인 이해력이나 감수성이 작곡자에 비해 항상 뒤처질 수밖에 없는 대중들을 현대음악에 좀 더 가까이 근접시키기 위해서 보다 친밀한 형태의 양식을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오네게르는 현대음악이 일반 대중에게서는 외면되어지도록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작곡가와 대중과의 격차를 줄여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즉, 진보적인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도록 표현하거나 실험정신이 투철해도 좋을 법하지만, 언젠가 이런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미래의 대중을 기다리기보다는 현실에서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럼 이렇게 배려한 오네게르의 깊은 애정의 손길을 귀로써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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