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절대음악의 신봉자였던 브람스는 그의 생애에 사려 깊은 명선율들을 써냄으로써 가장 독일적이고 가장 절대음악적인 전형을 보여준 작곡가로 음악사에 기록되어 있다. 더구나 이러한 작곡 태도가 표제음악이 판치던 낭만주의의 한 복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기도 하다. 그만큼 브람스는 음악 그 자체에 대하여 장난끼 섞인 묘사법을 철저히 배격한 작곡가였으며, 그런 점에 있어서 브람스는 베토벤에 가장 근접한 작곡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브람스가 살았던 시대(1833 - 1897)가 말해주는 것처럼, 그의 전생애가 낭만주의 음악의 전성기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곡들이 절대음악 일변도로 시종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슈베르트 - 슈만에 이은 독일 정통 가곡의 계승자라는 점만으로도 브람스 음악의 낭만성이 충분히 인정되고도 남을 일이다.
브람스는 오페라를 작곡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작곡 생애를 일관하면서 무수한 성악곡들이 쓰여졌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비록 슈베르트나 슈만처럼 본격적인 선율 위주의 성악곡을 쓰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가 남긴 성악곡의 분위기가 충분히 사색적이며 중후한 인생철학의 배경을 깔고 있다는 점에서 뒷날의 말러로 이어지는 길을 터놓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오케스트라 반주를 동반하는 합창음악에서 그러한 깊은 맛을 느끼게 된다.
브람스가 작곡한 성악곡 가운데 최고의 걸작은 역시 《독일 레퀴엠》이라 할 것이다. 이 독일어로 된 진혼곡에는 브람스 특유의 깊고 무거운 악상이 샅샅이 스며들어 실로 감동어린 영혼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이 《독일 레퀴엠》을 제외한다면 브람스의 합창음악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결작이 《운명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혼성 4부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하여 쓰여진 《운명의 노래》는 연주시간 약 20여분에 달하는 비규적 규모가 큰 합창곡이다. 여기엔 브람스가 즐겨 사용한 인생의 미묘한 정감을 강도 높게 표출함으로써 음악으로 철학을 논하려는 태도가 역력하다.
브람스는 1868년 여름 북해에 가까운 오르덴부르크에서 보내고 있었다. 여기서 알게 된 사람이 디트리히(Albert Dietrich)라는 음악가인데, 브람스는 그의 서재에서 독일의 시인 횔덜린(Friedrich Hölderlin, 1770 - 1843)의 시집을 읽었고, 그 중에서도 《운명의 노래》라는 시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횔덜린은 비교적 비판성이 높은 시들을 발표하여 언제나 우수에 어린 시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경향을 보여 준 시인이었다. 《운명의 노래》 역시 이러한 시적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난 작품으로, 결국 인간은 암흑의 세계로 파멸하고 말 것이라는 운명적인 언어를 교차시키고 있었지만, 브람스는 여기에 만족할 수가 없어서 관현악 후주를 덧붙여 희망과 의안으로 전곡을 맺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합창곡은 c단조로 시작하여 마침내 C장조로 돌아가 음악의 아름다운을 배가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전곡은 1871년 5월에 바덴에서 완성, 그해 10월 18일 칼스루에 박물관 홀에서 브람스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다음해인 1872년 1월 5일에는 브람스의 고향 함부르크에서 연주되어 크게 호평을 받았고, 빈에서는 1월 21일 안톤 루빈스타인의 지휘로 연주되었다.
원시(原詩)의 분위기를 살려가면서 브람스 나름대로의 긍정적인 의지를 가필시킨 합창음악의 걸작이다.
오케스트라는 여러 다른 방식으로 연주할 수 있다.
소리가 명확하게 하기도 하고, 어택과 아티큘레이션을 강하게 연주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유연한 울림, 투명하고 가벼운 소리로 연주할 수도 있다.
오케스트라가 어떤 작품을 연주할 때는 이런 다양한 것들을 동시에 이루어, 강력한 힘과 가벼움 그리고 투명함이 공존하는 연주가 필요하기도 하다. 이러한 결과를 얻으려면 세세하게 파고 들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콘서트에서 연주가 자연스럽게 흘러서 방향감과 힘이 느껴져야 한다. 항상 이런 에너지가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나의 현실은....? 그리고 우리의 현실은...?
에너지를 만들기에는 벽이 높고, 많다.
역부족이다. 그래도 넘어보는 수 밖에!
오늘도 작품을 세세하게 파고 들어 에너지가 흐르는 무대를 만들 수 있는 그날을 꿈꾸며 신발끈을 조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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