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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

바흐의 부업

by 정마에Zeongmae 2020.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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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가 쾨텐의 궁정 악장에서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 칸토르로 옮겨 앉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기본급은 적지만 임시 수입이 상당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만큼 임시 수입은 들어오지 않았다. 바흐가 말하는 임시 수입은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위한 음악의 작곡 및 연주였다. 바흐는 친구인 에르트만 앞으로 보낸 유명한 편지에서 이 임시 수입에 대한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유명한 글이어서 그 일부를 소개하겠다. '현재 나의 수입은 약 700탈러이며, 평상시보다 장례식이 많으면 그에 따라 임시 수입도 늘어나지만, 건강 열풍이라도 불면 반대로 수입이 줄어듭니다. 예를 들자면 작년의 경우에는 보통 장례식을 통해 얻었던 수입보다 100탈러 이상이나 줄어든 상황이었습니다.' (‘바흐 자료집)”

-  ‘베토벤의 이중계약’, 니시하라 미노루 저 -


라히프치히 성 토마스교회 앞에 있는 바흐의 동상(멘델스존이 건립을 추진함)


    바흐는 1708년부터 1723년까지 약 15년간의 궁정악장을 뒤로 하고 라이프치히의 토마스 칸토로로 취임을 했습니다. 즉 궁정에서 교회로 직장을 옮긴 것이죠.

   첫째 이유는 쾨텐의 음악 상황이 악화되었고, 또 자녀들의 교육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에 대학도시에서 요직에 취임하는 것은 바흐의 이런 가정 문제에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이유는 교회에서 진행되는 장례식에 필요한 곡의 작곡과 연주를 통해 짭짤한 부가 수입을 올릴 생각이었죠. 그런데 그의 불만이 참 흥미롭습니다. 건강 열풍이 불면 수입이 줄어든다는 것이죠. 바흐가 사람들이 아프기를 희망했는지 모르겠으나, 누군가의 부고가 전해질 때마다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을 듯싶기도 합니다. 암튼 그 덕에 우리는 바흐의 위대한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라히프치히 시절 많은 곡들이 작곡되었고, 이 도시에서 유행한 커피를 소재로 한 《커피칸타타》(BWV211)도 이때에 작곡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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