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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

슈만의 혁명성-작곡가들의 사회상황에 대한 음악적 대응에서 우리는 또 배워야

by 정마에Zeongmae 2020.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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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은 1834년에 새로운 음악잡지, <라이프치히 음악신보Neue Leipziger Zeitschrift Für Musik>를 창간했다. 그 때 그는 성미가 급한 24살의 청년이었다.

그는 아마도 그의 일생 동안 작곡가보다는 비평가로 더 잘 알려졌었으며, 대중적인 음악적 토론을 이끌어 낸 중요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음악적 혁신에 대한 슈만의 열정적 논의와 베를린, 파리, 비엔나 등지에서 원고료를 받고 보내는 보도 자료들로 인해 <라이프치히 음악신보>는 독일 전역과 유럽의 다른 다라들에서도 구독되었다.

라이프치히 음악신보 Neue Leipziger Zeitschrift Für Musik

진보적인 싸움을 하기 위해 슈만은 글을 쓸 때 가공의 인물들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다비드동맹Davidschündler'과 그에 반대하는 ’필리스틴Philistines'이다.

슈만은 피아노 곡 <사육제Carnaval>의 마지막 행진곡 <필리스틴에 대항하는 다비드동맹의 행진>과 <다비드동맹 무곡>에서 이를 표현했다. 슈만의 말을 빌리면 다비드동맹은 괴테의 자서전을 연상시키며 ‘잡지에 끼어있는 빨간 책갈피같이 스스로 상처를 입은, “진실과 시”를 우스꽝스럽게 섞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다비드동맹은 몇 가지 유행들을 합쳐놓은 것이다.

 

거기에 속하는 인물들로는 친구들이나 잘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가명으로 되어있다. 예를 들면, 멘델스존은 펠릭스 메리티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가명을 좋아하는 성향은 슈베르트 세대 교양 모임의 특징이다. 그 중에는 1813년경까지 모임을 유지했던 칼 마리아 폰 베버의 <화음협회Harmonische Verein>같은 음악협회도 있었다. 이 모임에서는 모든 회원들이 가명을 사용했으며 베버는 스스로 멜로스라고 불렀다.

슈만은 이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그가 탐독했던 동시대 소설가인 장 파울Jean Paul의 이중성격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슈만은 자신을 플로레스탄Florestan이나 혹은 오이제비우스Eusebius라고 서명하곤 했는데, 이를 통해 그 자신 안에 있는 창조적인 두 측면 즉, 불같은 성격과 서정적인 성격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플로레스탄은 베토벤의 <피델리오>에 등장하는 영웅으로 정치적인 이유로 감옥에 갇히는 사람이다. 오이제비우스는 잘 알려진 바 없는 4세기경의 기독교 성자로 순교와 고난이라는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플로레스탄은 다비드동맹의 리더였으며 반동적이며 비문화적인 필리스틴의 적들에 대항하기 위하여 다시 돌아온 음악적 진보파였다.

 

슈만의 수많은 글들을 통하여 우리는 그가 만들어 낸 가공의 인물들이 마치 선한 내면의 목소리처럼 그에게 말을 걸고 문학적, 음악적 계획에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정서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위로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슈만의 비평은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주관성을 띠고 있다. 슈만은 한 저널에 ‘다시 뭉친 다비드동맹, 젊은이와 성인, 그리고 바로 당신은 음악의 영역에 혹은 다른 곳에 나타나는 필릭스틴을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라고 글을 썼다.

실제로 슈만은 음악이 처한 상황을 정치적인 용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정치적 현실에서처럼 음악도 자유주의파, 중도파, 복고파, 혹은 낭만주의파, 근대주의파, 고전주의파로 나누어야 한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오른쪽에는 노인들이 앉아있으니 대위법을 사용하는 사람들, 반음계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고 왼쪽에는 젊은이들이 있으니 프리지안 캡을 쓴 형식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 천재적인 뻔뻔함을 자긴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돋보이는 사람은 베토벤이었으니……’

 

슈만은 작곡과 글쓰기를 통해 당시의 상황에 대해 개혁하고자한 음악가이다. 새로운 양식적 패러다임과 극단적인 화성의 사용 등 그의 작품은 당시로는 새로운 장치로 가득한 혁명적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20세기 초 모더니스트들의 혁명적인 음악의 한 축은 슈만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곡가들의 사회상황에 대한 음악적 대응에서 우리는 또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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