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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

화성의 영감(L'Estro Armonico)과 창조 , 창의

by 정마에Zeongmae 2020.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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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는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의 작곡가이며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그는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사원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버지 지오반니 바티스타에게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웠습니다.

1703년에 성직에 들어갔으나 몸이 약했기 때문에 미사 집전을 면제받았으며 머리카락이 붉었기 때문에 “붉은 머리 신부”라 불렸습니다.

비발디는 작곡과 오르간을 레그렌찌에게 배웠고, 한편으로는 알비노니, 마르첼로의 영향을 받아 약40곡의 오페라를 남기고 있으나 오늘날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다작가로서 오페라, 교회음악, 기악곡 등 그 종류에 있어서도 광범위하며, 특히 협주곡은 그의 작품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의 협주곡과 기악곡의 대부분은 아직 수고(手稿)인 채로 남아 있습니다. 그 중 80곡의 협주곡은 드레스덴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비발디로 추정되는 초상화. 작자 미상, 1723년

 

그는 바이올린 음악, 특히 협주곡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중요한 작곡가입니다. 그의 콘체르토는 대개 알레그로-아다지오-알레그로의 3악장 구성에 따랐으며, 때로는 아다지오의 도입부응 부가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엄격한 대위법, 침착하고 리드믹한 감정이 충만한 주제, 달콤함이 없는 것 같은 그러나 고귀한 서정으로 가득한 선율과 화성이 비발디 음악의 매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약 450곡이 넘는 비발디의 협주곡을 살펴보면 현악기만으로 되어있는 것이 약 70% 이상인 약 330곡이며 그중 바이올린 독주가 으뜸이 되는 곡이 70%에 가까운 약 300곡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숫자는 바로 그가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하는 현악 협주곡의 작곡가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작품 3은 그의 그와 같은 협주곡집의 최초의 출판으로서 1712년에 암스테르담의 에티에느 로제에서 간행되었으며 12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토스카나 대공 페르디난드 3세에게 헌정된 이 작품의 내용은 거의 현악 통주저음의 협주곡이나 그 편성과 형식은 한결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독주 협주곡의 경우도 그다지 명인기적인 기교를 구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대부분은 그가 오랫동안 관계한 베네치아의 소녀고아원(이곳은 사실상 고도의 음악교육을 실시한 음악학교였음)의 학생을 위해 쓴 곡으로 추측됩니다. 이 작품집의 12곡 중 6곡을 바흐가 편곡하여 더욱 널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바흐에 의한 편곡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 3번 사(G)장조 → 바(F)장조의 <쳄발로 협주곡>
제 8번 가(a)단조 → 가(a)단조의 <오르간 협주곡>
제 9번 라(d)단조 → 라(d)단조의 <쳄발로 협주곡>
제 10번 나(b)단조 → 가(a)단조의 <4대의 쳄발로 협주곡>
제 11번 라(d)단조 → 라(d)단조의 <오르간 협주곡>
제 12번 마(E)장조 → 다(C)장조의 <쳄발로 협주곡>

제목 “L'Estro Armonico"는 정확하게 번역하기 애매한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스트로는 ‘충동’, ‘욕구’, ‘영감’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아르모니코는 ‘조화의’, ‘화성의’라는 뜻과 더불어 더욱 넓은 뜻으로는 ‘음악의’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들으며 제목을 다시금 깊이 생각해 봅니다. 영감의 원천이 욕구와 충동이라는 중의성은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해 줍니다. 우리는 창의성의 발로가 영감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감’을 주는 근원에 대해서는 미처 간과하고 지나갑니다. 여기서 ‘영감’의 근원이 어떤 것에 대한 ‘충동’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이루고자하는 ‘욕구’ 내지는 ‘욕망’을 품게 되는데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창조’ 내지는 '창의'에 대해서 말들을 많이 하는데 그 창조의 근원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해야 합니다. 누구나 창조의 근원이 ‘영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영감’이 어느 순간 우리의 머릿속을 스치며 나온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영감’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충동’과 간절한 ‘욕구’가 있어야 ‘영감’은 그 샘을 터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감’만으로 창조적 작업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한 ‘창조’는 ‘아르모니코’를 바탕으로 해야만 합니다.

상호 조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영감’은 허상으로 끝나게 됩니다. 전체적인 구조와의 관계를 올바로 파악하고 조화를 생각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영감’을 전개할 때 비로소 창조적 작업의 결과물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플라톤이 그의 저서 ‘국가론’에서 하모니를 다음과 같이 강조한 것입니다.

 

“하모니는 혼의 내부로
아주 깊이 파고 들어오는데, 
이때 그것은 우아함을 함께 지니고 와서
혼을 사로잡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올바르게 교육을 받게 되면 
하모니는 그 혼을 품위 있고
우아하게 만들어 주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그와 반대의 것으로 만들어 주게 된다” 
- 플라톤 <국가론> 중에서

 

플라톤의 가르침처럼 우리의 삶은 상호 조화(하모니)를 바탕으로 하는 영감에 기초할 때 진정 아름다울 것입니다. ‘창조’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항상 조화를 생각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는 ‘욕구’ 또는 ‘영감’에서 나오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L'Estro Armon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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