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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

순정의 가곡왕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II

by 정마에Zeongmae 2018.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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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타트콘빅트(Stadtkonvikt)를 떠나 아버지를 돕던 프란츠는 징병을 피하기 위해 사범학교에 다니게 된다. 이는 아버지의 뜻으로 당시 초등학교 보조교사는 병역을 면제했기 때문이다. 사범학교는 슈타트콘빅트의 엄격한 기숙사 생활보다는 작곡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도 있었다. 그는 이해(1813년) 가을 『교향곡 제1번』을 완성하였고, 또 이듬해에는 『미사 F장조』를 작곡하여 리히텐탈 교회 100년 기념제에서 초연되었다. 

   미사 초연 때 소프라노를 맡은 테레제 그로브(Therese Grob)는 그 후에도 자주 슈베르트의 작품을 교회에서 불렀는데, 그는 어느 사이엔가 이 아름다운 소프라노 가수를 연모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이 사랑은 끝내 결실을 보지 못하고, 테레제는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버린다.

   사범학교의 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프란츠의 업무는 1학년에게 ABC를 가르쳐야 하는 보조교사였다. 그가 영감이 떠올라 작곡에 열중할 때 무심한 아이들은 마구 떠들어댔다. "내가 작곡할 때는 어린 아이들이 한층 더 시끄럽게 떠들어. 그럴 때는 화가 나서 두둘겨 주곤 했지." 후일 슈베르트는 그때를 회상하며 친구 라이너에게 이런 말을 했다.

   슈베르트가 괴테의 시에 곡을 만든 불후의 명곡 『마왕』 (1815년)은 이런 환경에서 나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한 해에 오페라를 여덟 편이나 썼다. 그것은 그해에 그의 손에 여덟 편의 대본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는 부지런했고, 또 음악의 샘이 넘쳐 흘렀던 것이다. 그러나 수십 편이나 되는 그의 오페라는 한 편도 무대에서의 상연을 보지는 못했다. 

▶ 마왕 D.328 Op.1  


슈베르트가 18세 때 시성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걸작으로

가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락이 반복되는 부분이 없이 작곡된 통절 가곡이다.

즉흥적으로 단숨에 썼다는 이 곡은 그의 재능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덴마크의 전설에 바탕을 둔 것으로, 

초연은 당시 14세인 란드할딘가가 불렀는데 앙코르를 받아 두 번이나 불렀다고 한다,

말이 질주하는 모습을 그린 음산한 셋잇단음의 전주로 시작한다.

해설자, 아버지, 아들, 마왕 등 네 사람의 소리로 분담하여 극적으로 노래되는 데,

아버지의 말은 나직하게, 아들의 소리는 긴장되고 높게,

마왕의 소리는 속삭이듯이 약사게 쓰였으며,

이 점이 이 가곡의 재미이자 동시에 어려움이다.

또 오묘한 전조나 절묘한 화음을 사용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 점도 놓쳐서는 안 된다.



   1814년 유럽에 군림하려던 나폴레옹이 경정적으로 패배해서 그 뒷수습을 하기 위한 빈 회의는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의 회유정책으로 춤과 술과 노래로 각 국의 군주들과 외교관들의 넋을 뽑아 놓게 했다. 700명이 넘는 각 국의 군주와 외교관들, 그 밖에도 10만의 사람들이 빈의 거리를 뒤덮고 밤낮없이 주연으로 날을 보냈다. '춤추는 회의, 진전은 없고'였다. 이 회의에 참가한 어떤 군주는 "빈 시민은 모둑 사랑과 미에 살고, 그리고 누구나 로맨스에 산다."고 부러워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슈베르트는 징병기가 끝나자 1816년 3년의 보조교사 생활을 접게 된다. 사실 아버지에게 쫓겨난 것이다. 원래가 마음에 없는 직업이었고, 그의 주위에는 자유와 청춘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슈타트콘빅트 시절읭 친구 슈파운을 위시하여 쇼버, 슈빈트, 마이어호프 등, 만나면 즐거운 친구들이 있었다. 슈베르트가 마음을 잡고 교사 생활에 전념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집에서 쫓겨난 슈베르트는 슈파운의 소개로 시인 쇼버(Franz von Schover)를 만나게 되어, 그의 집에 살면서 보헤미안의 생활을 하게 된다. 피아노 교사로서 생활할 것을 결심했지만, 원래 피아노도 교육도 능숙하지 못한 그는 여전히 제자나 친구들의 도움에 의존하는 불안정한 생활을 계속해 갔다.

   슈베르트를 중심으로 그룹이 생겼다. 수줍어하고 겸손한 그였으나, 착하고 욕심이 없는 순수한 인간적 매력이 그를 어느새 중심 인물이 되게 한 것이다. 

   슈타트콘빅트 시절부터 가장 친했던 슈파운은 슈베르트의 짦은 일생 동안 변함없는 우정과 이해로 일관한 다시 없는 친구였다. 남자답게 생긴 그는 성품도 활달해서 완고한 슈베르트의 아버지를 설득하여 두 번이나 쫓겨난 슈베르트를 집에 출입할 수 있도록 하기까지 했다.

   집에서 쫓겨난 슈베르트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한 쇼버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서 교양이 있었고, 외모 또한 좋은 데다가 언변이 좋아서 하앙 로맨스가 끊일 사이가 없었다. 이런 그의 생활은 소심한 슈베르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쇼버는 법률을 전공했으나 시와 희곡을 쓰며 그림과 음악에도 능했고, 나중에는 배우가 되기까지 했다. 그는 당대 최고 성악가인 포글(Johann Michael Vogl, 1768~1840)을 이 그룹에 끼게 해서 슈베르트의 가곡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게 했다. 

모임의 일원이었던 화가 모리츠 폰 슈빈트가

기억을 토대로 1868년에 묘사한 슈베르티아데의 순간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는 슈베르트가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했던 작은 음악회의 이름으로,

슈베르트가 생전에 자신의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거의 매일 만나 함께 연주하고 감상하며 즐긴 '음악과 사교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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