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usic Story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 #2

by 정마에Zeongmae 2023. 12. 12.
728x90
반응형

    파리음악원을 졸업하지 못한 열등감 때문이었을까, 드뷔시에게 인정 받고 싶었던 걸까? 사티는 39세였던 1905년 가을, 뱅상 댕디가 교장으로 있던 파리의 사립 음악학교 스콜라 칸토룸에 입학하여 대위법과 음악 이론 을 공부하고 1908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학업을 마친 사티 곁에는 라벨과 콕토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사티에게 연주를 알선해 주고, 곡의 출간을 도왔으며, 살롱을 드나드는 사티를 차에 태워줬습니다. 드뷔시는 처음에는 그를 존경했지만 나중에는 배척했고, 라벨은 그를 지지했으며, 콕토는 그를 우상화했어요.


    사티의 음악은 '침묵'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는 침묵 이전에 온 것과 이후에 올 것을 작곡했습니다. 1888년, 사티는 라투르의 시 「고미술품」에서 영감을 얻어 <짐노페디Gymnopédies>를 작곡했어요. <짐노페디>는 부드럽고 매혹적인 선율의 왈츠 곡으로, 고전적인 피아노 음악을 뒤엎었죠.

    1890년에는 조표와 세로줄을 폐지한 <그노시엔 Gnossiennes>을 작곡했습니다. 이 밖에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영감을 얻은 <소크라테스>, '가구처럼 그저 그 자리에 있는 음악'이라는 뜻의 '가구 음악'도 사티가 우리에게 남긴 선물이에요.

    1898년 12월, 사티는 파리 남쪽 교외의 아르퀴유로 떠났다. 아르퀴유 코시가 22번지, 다섯 평 남짓한 집, 수도도 전기도 없는 모기가 득실거리는 그곳에서 알코올중독, 간경화, 늑막염으로 고생하면서도 아동 복지를 위해 힘쓰고, 밤에는 몽마르트르의 카바레에서 일하며 수많은 샹송을 작곡했습니다.

    1925년 7월 6일, 그의 장레식 날에는 날씨가 아주 화창했고, 장례 행렬은 매우 길었습니다. 향년 59세였습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