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이탈리아를 여행한 차이코프스키는 「플로렌스의 추억」의 스케치를 하고, 그해 러시아로 돌아와서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간혹 화가들이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때 사진을 찍어오거나 스케치만 하고 채색은 화실에서 입히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인지 곡의 ㅇ내용은 이탈리아보다는 러시아의 민요 선율과 정서가 두드러집니다.
「플로렌스의 추억」은 모두 4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전형적인 현악 4중주곡의 형식과 거의 유사합니다. 곡의 악기편성은 기존의 현악 4중주를 구성하는 악기에 비올라와 첼로가 하나씩 더 추가된 형태입니다. 이런 형태의 구성을 취한 것은 현악 4중주보다 중저음이 강화되어 무게감이 더 큽니다. 이 곡을 작곡하는 동안 차이콥스키가 동생 모데스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흔한 방식으로 작곡하는 게 싫어서 6개의 소리로 시도하고 있는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든다"라고 토로한 것을 보면 작곡에 애로가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고생은 헛되지 않아 이와 같이 아름다운 곡이 탄생했습니다. 이 곡을 듣다 보면 6개의 악기가 조화를 이루어 이렇게도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6개의 현악기가 내는 소리의 조합이 우리를 그 선율에 실어 고도(古都) 플로렌스로 데려갑니다.
그런데 음악학자들이 차이코프스키의 발자취를 조사해 본 결과, 그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동안에 피렌체를 들른 적이 없는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여행에 흥분한 차이코프스키가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을 방문하고서 피렌체에 간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간혹 여행 중에 찍은 사진을 보고 그것이 어디였는지 헷갈릴 때가 있는 것처럼요.
「플로렌스의 추억」은 차이코프스키의 기법이 한창 무르익던 50세 때의 작품이기에 연주자들의 기량과 음악성을 잘 증명할 수 있는 곡입니다. 또 각기 쌍으로 구성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여섯 주자들 간의 호흡, 앙상블이 매우 중요해서 연주 시 끊임없이 남의 소리를 듣고 맞춰야 하고 내 몫의 소리는 책임져야 되는, 앙상블 경험이 충분치 않으면 소화하기 힘든 곡입니다.
1 악장 Allegro con spirit: 6대의 현악기가 단조의 멜로디를 빠르고 기운차게 이끌어 나가지만 그 안에 낭만적이면서도 쓸쓸한 우수의 감정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2 악장 Adagio cantabile e con moto: 사랑이 가득하다 넘쳐나 눈물까지 나오게 하는 느린 악장으로 이 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장입니다.
3악장 Allegro moderato: 곡이 빨라지면서 러시아의 민속적 리듬이 튀어나옵니다. 그러면서도 꽤나 이국적인 냄새가 나는 악장입니다. 농민들이 춤을 추는 듯한 즐거운 춤곡 형태인데, 그것이 이탈리아에서 포도를 수확하는 농부들을 연상시키든 혹은 러시아에서 귀리를 수확하는 농부들을 떠올리게 하든, 듣는 사람에게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다 해도 이 곡은 언제까지나 그대로 「플로렌스의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4악장 Allegro vivace: 빠르고 활기차게 기쁨을 실어오면서도 어딘가 우수에 젖은 선율이 플로렌스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마지막 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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