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완성된 책을 처음 받아 든 순간을 사람들은 흔히 감격스럽다고 말한다. 눈물이 핑 돈다고도 한다. 그런데 내가 느낀 것은 감격보다는, 어떤 묵직한 침묵이었다. 40여년의 시간이 한 권으로 묶여 손 안에 들어왔을 때, 사람은 생각보다 말이 없어진다.
『오케스트라 경영학: 하모니의 역설』. 제목을 소리 없이 읽어보았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내가 거슬러 올라간 시간은 단순히 원고를 쓰던 몇 달이 아니었다. 처음 오선지 앞에 앉던 날부터, 머릿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악보라는 언어로 옮기는 법을 익히던 날들부터, 그리고 아무도 연주하지 않았는데 이미 음악이 완성되어 있던 그 고요한 순간들부터였다. 책 한 권은 그 모든 시간의 결산이었다.

그런데 결산은, 끝이 아니었다.
작곡가는 초연이 끝난 자리에서 이미 다음 곡의 첫 소절을 듣는다. 박수가 채 가시기 전에, 아직 악보에 옮기지 않은 선율이 귓가에서 맴돈다. 나에게 지금이 그런 시간이다.
책이 서점에 자리를 잡기도 전에,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스스로도 조금 우스웠다. 잉크도 마르기 전에 무슨 서두름인가 싶었다. 그러나 이내 알았다. 이것은 서두름이 아니었다. 첫 번째 책을 쓰는 동안 계속해서 마음 한켠에 쌓여가던 것들이 있었다.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들, 첫 번째 책의 문법으로는 담을 수 없었던 결들. 그것들이 책이 완성되는 순간 비로소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주제를 정했다. 오랜 사색 끝에 이른 자리였다. 어느 날 새벽,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가만히 앉아 있을 때였다. 밖은 아직 어두웠고, 찻잔에서는 가느다란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때 문득, 내가 평생 오선지 위에서 다루어온 것과, 내가 오래전부터 글로 써온 것들이, 그리고 지금 이 시대가 묻고 있는 질문들이 하나의 점에서 만나는 느낌이 왔다. 소름이 돋는 종류의 느낌. 작곡가라면 알 것이다. 수십 번 고쳐 쓰던 악절이 갑자기 제자리를 찾는 그 순간을. 나는 그날 새벽 그것과 비슷한 것을 느꼈다.
그 이후로 자료가 쌓이기 시작했다. 책들이 펼쳐지고, 메모가 늘어나고,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쓰지 않고 그냥 생각만 했다. 생각도 작곡이다. 악보에 음표를 그리기 전에 먼저 그 음악이 내 안에서 충분히 울려야 하듯, 글도 쓰기 전에 먼저 충분히 살아야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첫 번째 책을 쓸 때와 같으면서도 다르다. 같은 것은, 밤과 새벽의 긴 시간들, 언어를 찾는 고독함, 그리고 써놓고 다시 지우는 반복. 다른 것은, 이번에는 지휘자의 자리가 아니라 작곡가의 자리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무대 위에서 음악을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음악이 존재하기 이전의 침묵 속에서 소리를 불러내는 사람의 자리. 아무것도 없는 오선지 앞에서 첫 음표를 찍는 사람의 자리.
지금 내 책상 위에는 첫 번째 책과 새로 쌓인 자료들이 함께 놓여 있다. 완성된 것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 그 둘이 묘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초연이 끝난 악보가 아직 쓰이지 않은 악보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는 것처럼.
나는 다시 오선지 앞에 앉았다. 아직 단 한 음도 적히지 않은, 그러나 이미 내 안에서는 조용히 울리고 있는 그 빈 페이지 앞에서.
두 번째 악장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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