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니콜라이 말코(Nikolai Malko)는 쇼스타코비치의 전격적인 작곡활동 개시와 많은 연관성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우선 그는 1924년 5월 12일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번의 초연을 지휘했다. 교향곡 제1번의 대대적인 성공으로 쇼스타코비치는 단숨에 일류 작곡가의 반열에 들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발터, 크렘펠러, 토스카니니 등 당대 지휘자들이 작곡가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곧 교향곡 제1번은 일상 콘서트의 정규 레퍼토리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교향곡 제1번의 초연 이후 소련에서 서구로 이주할 때까지 3년 동안 말코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청중에게 전파하는 일을 지속하였을 뿐만 아니라 작곡가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친구로서의 역할도 자청했다. 그는 또한 유망한 젊은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를 당대의 유명한 음악학자이자 탁월한 식견을 소유한 지성인이었던 이반 솔레친스키(Ivan Sllertinsky)에게 소개하는 매개역할을 하기도 했다. 솔레친스키의 영향을 받게 된 쇼스타코비치는 말러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바흐에서 오펜바흐까지'의 모든 종류의 음악을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음악적 기반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쇼스타코비치는 학생 시절부터 이미 악보를 속독하는 능력(sight reading)과 비범한 기억력, 그리고 번개같은 속도로 작곡을 할 수 있는 재능 등으로 인해 전설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었다. 《타히티 트로트(Tahití trot)》가 작곡된 때는 1928년 가을이었는데, 작곡의 계기는 쇼스타코비치의 재능을 시험해 보려는 말코의 돈내기였다. 말코는 빈센트 유만(Vincent Youman)의 'Tea for Two'를 쇼스타코비치가 한 시간 안에 오케스트레이션을 마치는데 돈을 걸었다. 이에 쇼스타코비치는 자리에 앉은 지 40분만에 위트가 넘치고 독창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끝마쳤고, 말코는 이 작품을 1928년 11월 25일 모스크바의 연주회에서 초연했다. 이때 함께 연주된 쇼스타코비치의 새로운 작품으로는 완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오페라 '코'(The Nose)의 관현악 모음곡, '스카를라티의 두 소품'(이 작품 또한 말코가 의뢰한 것) 등이었다.
《타히티 트로트(Tahití trot)》의 러시아에서의 인기는 대단해서 곧 레스토랑의 악단들에 의해 자주 연주되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그리고 지휘자 알렉산더 가우크(Alexander Gauk)의 권고에 의해 발레 '황금 시대'(The Golden Age)의 3막 시작 전 간주곡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매번 발레 공연 때마다 앙코르를 받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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