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젖은 낙엽을 일컬어
‘누레오치바’라고 부릅니다.
젖은 낙엽은 길바닥에 눌러 붙어
빗자루로 잘 쓸어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누레오치바’는 치워버리고 싶지만
쉽게 치워지지 않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일본에서는 최근 은퇴 후
집에서 머무는 노년의 남성을 ‘누레오치바’라고 부르며
젖은 낙엽과 같은 존재로 여깁니다.
더 이상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는 남성이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현실적으로 표현한 단어입니다.
물질이 신분의 가치를 평가하는 시대에서
어쩌면 당연한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비에 젖은 존재는 아니겠지만
그런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사회를 보면
인간의 가치는 갈수록 쓰레기처럼
처량한 모습으로 전락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돈이 사람을 만들고 길들이는 시대에서
늙어 생산력을 잃어버린 젖은 낙엽과 같은 사람들,
회사를 위해, 가족을 위해 젊음을 다 바친 그들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그들이 이제 기대고 쉬어야 할 곳은 가정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
더불어 사는 사회는 신분을 떠나
사람을 소중한 가치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극장에서 대체로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
영화가 끝나자마자 일어서서 나오기 때문에 주목하지 않지만,
맨 마지막에 음악과 함께 오르는 자막이
엔딩 크레디트(Ending Credit)입니다.
나는 감동적인 영화를 보면 끝까지 자리에 남아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서
마지막 여운을 더 음미합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만이 아니라
감독, 시나리오, 조명, 촬영, 소품, 의상, 음악….
수없이 많은 이들이 배후에서 수고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만든 이들에게
나는 마음으로부터 박수를 보냅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런 훌륭한 영화가 없었을 것이니까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오늘이 있기까지 나의 오늘을 만들어준 사람들,
우리의 오늘의 삶을 복되게 만들어준 사람들의 엔딩 크레디트가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오늘의 삶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우리 부모세대가,
우리의 잘 사는 오늘 위에는
우리가 귀찮게 보고 있는
비에 젖은 낙엽 그 노인들이 있습니다.
나의 삶에도 부모님을 비롯하여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이름이 올려질 것입니다.
이렇게 늙어가는 나도
다른 누군가의 삶의 엔딩 크레디트에 올려지기를 바라지요.
그리고 이 땅의 노인들이 누레오치바가 아니라
이 사회의 엔딩크레디트의 대상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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