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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오케스트라 경영학: 하모니의 역설

심부재언, 시이불견(心不在焉, 視而不見) — 보이지만 보지 못하는 경영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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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大學)』은 말한다.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나는 지휘대에 서서 이 문장을 자주 떠올린다.

오케스트라 연습 중에 이런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한 단원이 악보를 눈앞에 두고, 활을 긋고,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소리가 죽어 있었다. 기술적으로는 완벽했다. 음정도 맞고, 리듬도 정확했다. 그런데 음악이 없었다.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몸은 연주석에 있었으나, 정신은 이미 연습이 끝난 뒤의 저녁 식사 자리를 향해 떠나 있었던 것이다.

경영 현장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회의실 안의 부재(不在)

임원 회의를 생각해 보자. 열두 명이 테이블을 둘러앉아 있다. 모두가 자료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간간이 메모를 한다. 그런데 회의가 끝나고 나면 결론이 없다. 아니, 정확히는 아무도 제대로 들은 것이 없다. CEO는 숫자를 보면서 이미 다음 달 투자자 미팅을 걱정하고, 영업 본부장은 경쟁사 동향을 체크하면서 스마트폰 아래를 훔쳐보고 있다.

심부재언(心不在焉). 마음이 그 자리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집중력의 문제가 아니다. 존재의 문제다. 몸은 회의실에 있지만, 마음은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을 부유(浮游)하고 있다. 그 결과 눈앞의 현실 — 팀원이 보내는 신호, 숫자 뒤에 숨은 맥락, 고객이 정말로 원하는 것 — 을 보아도 보지 못한다. 시이불견(視而不見)의 덫에 걸리는 것이다.

지휘자의 현존(現存)

『오케스트라 경영학』을 쓰면서 나는 지휘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 물었다. 지휘봉의 기술인가? 리허설의 효율인가? 아니다. 지휘자의 가장 중요한 역량은 현존(現存), 즉 지금 이 순간 이 음악 안에 완전히 깨어 있는 것이다.

무대 위에서 지휘자는 수십 명의 연주자가 보내는 신호를 동시에 읽어야 한다. 오보에 주자의 미세한 긴장, 첼로 파트의 호흡, 호른 주자가 고음을 앞두고 어깨를 살짝 올리는 움직임. 이 모든 것을 감지하려면 마음이 완전히 현장에 있어야 한다. 과거의 공연을 반추하거나, 다음 시즌 레퍼토리를 구상하는 순간, 지휘자는 현재의 음악을 잃는다.

탁월한 경영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회의실에서 숫자 뒤의 사람을 보고, 보고서 뒤의 맥락을 듣고, 침묵 속의 신호를 감지한다. 그 감지력은 기술이 아니라 현존에서 온다.

'보는 것'을 경영하라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을 현장에 붙들어 둘 것인가.

첫째, 회의 전 3분의 침묵이다. 자리에 앉기 전,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고 지금 이 대화의 목적과 상대방에게 집중한다. 오케스트라가 연주 전 악장의 지시 음 하나에 귀를 모으듯이.

둘째, 메모가 아닌 질문이다. 회의 중에 메모에 집중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과거를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지금 상대의 말을 듣고, 그 말 속의 결을 느끼고, 거기서 질문을 건져 올려야 한다.

셋째, 한 가지 연주에 집중하는 것이다. 지휘자는 동시에 여러 단원을 보지만, 한 순간에는 한 파트에 집중한다. 경영자도 마찬가지다. 멀티태스킹은 심부재언(心不在焉)의 다른 이름이다.

위대한 연주는 기술이 아니라 현존에서 태어난다. 위대한 경영 역시 전략보다 먼저, 지금 이 순간 이 사람 앞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당신은 지금,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 정현구, 『오케스트라 경영학: 하모니의 역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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