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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표지가 결정되었습니다 — 그리고 '하모니의 역설'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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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명의 목소리가 한 방향을 가리켰습니다.
지난 며칠간 진행된 표지 디자인 투표에 무려 207명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 전,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 고민해 주셨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제게는 깊은 감동입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후보 득표 수 비율

1번 (선택)85명41.1%
2번52명25.1%
3번48명23.2%
4번22명10.6%

1번 표지가 당당히 1위를 차지했습니다. 단순한 디자인 선호가 아니라, 이 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가장 잘 어울리는 표정을 여러분이 직접 골라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왜 부제목이 '하모니의 역설'인가

저는 40여 년간 지휘봉을 들며 이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져왔습니다.
"오케스트라는 왜 아름다운가?"
흔히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가 되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역설의 시작점입니다.
오케스트라의 하모니는 일치(一致)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리허설에서 시작됩니다.
지휘자는 리허설에서 끊임없이 불일치를 찾아냅니다. 박자가 어긋난 금관, 음정이 흔들리는 현악, 다이나믹이 무너진 목관—지휘봉은 그 어긋남을 멈추고, 다시 쌓고, 또 부수는 일을 수백 번 반복합니다. 완성된 연주회 무대의 감동은 사실 그 수백 번의 불일치와 씨름한 시간이 응축된 결과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하모니의 진정성은 처음부터 일치했던 것에 있지 않습니다. 불일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끈질기게 일치로 이끌어 가는 과정—그 과정 자체가 하모니입니다.
바이올린은 바이올린의 소리를 내고, 첼로는 첼로의 깊이를 유지하며, 트럼펫은 결코 플루트를 흉내 내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음색이 긴장하고 충돌하고 조율되는 그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다름이 제자리를 찾는 순간, 진짜 하모니가 울립니다.
다름이 사라질 때 하모니도 사라집니다. 그리고 과정이 없으면 하모니도 없습니다.
이것이 역설입니다.


플라톤이 '하모니'를 처음 문자로 정의한 순간

'하모니(ἁρμονία, harmonia)'라는 단어가 철학적 개념으로 최초로 문자에 기록된 것은 **플라톤의 『국가론(Politeia)』**입니다.
플라톤은 하모니를 단순히 '듣기 좋은 소리의 어울림'으로 정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서로 다른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질서'**로 보았습니다. 영혼의 세 부분과 국가의 세 계층이 각자의 덕과 역할에 충실하되, 서로 올바른 관계 속에 놓일 때—그것이 정의이고 아름다움이라 했습니다.
리허설의 언어로 말하면, 플라톤의 하모니는 완성된 화음이 아니라 화음을 향해 나아가는 운동 그 자체입니다. 불일치를 직면하고, 조율하고, 다시 울려보는 그 과정이 곧 질서를 만드는 행위—2,400년 전 아테네의 철학자와 오늘의 지휘자가 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개념을 무대에서 경영의 언어로 옮기려 했습니다.


조직에서 하모니의 역설이란

경영 현장에서도 리더들은 흔히 '하모니'를 갈망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종종 마찰 없음, 이견 없음, 순응입니다. 그것은 하모니가 아닙니다. 그것은 침묵입니다.
진정한 조직의 하모니는 플라톤과 오케스트라가 공통으로 증언하듯, 차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제자리에 두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제자리를 찾는 과정—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며, 불일치를 끈질기게 조율해 가는 리허설의 시간—이 없다면 어떤 조직도 진정한 앙상블에 이를 수 없습니다. 팽팽한 긴장이 해소되는 순간의 전율—그것이 위대한 앙상블이고, 위대한 조직입니다.
『오케스트라 경영학: 하모니의 역설』은 그 역설을 40년 지휘 경험과 경영 전략의 언어로 풀어낸 책입니다.


2026년 4월, 여러분이 직접 고른 표지로 찾아뵙겠습니다.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정현구 드림 지휘자·작곡가·경영 전략 컨설턴트 2024 대한민국 명인 (지휘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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