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한다는 착각: 데이터가 직감을 이길 때

표지부터 시선이 잡힌다. 검은 바탕에 빨간 바코드가 촘촘히 박혀 있는데, 시장의 소음 속에서 신호는 가늘다는 말을 시각적으로 건네는 듯하다. 책의 핵심도 그 메시지와 닿아 있다. 즉흥과 유행을 잠시 내려놓고, 검증 가능한 근거로 다시 시작하자는 제안이다.

우리는 수많은 브랜드와 제품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이 상품은 왜 인기가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을까?'와 같은 질문은 마케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해봤을 법한 고민이다. '마케팅한다는 착각'은 바로 이러한 궁금증에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책이다. 단순히 '어떻게 하면 물건을 잘 팔 수 있을까?'에 대한 표면적인 해답을 넘어, 마케팅의 본질을 과학적 증거와 데이터로 파헤친다.

이 책은 마케터가 쉽게 빠지는 자기확신을 집요하게 흔든다. "우리는 고객을 안다", "충성 고객이 성장을 만든다", "바이럴 한 방이면 된다" 같은 믿음을 데이터와 실제 구매 행태로 찬찬히 대조한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내가 믿어온 성공담이 선택적 기억과 예쁜 지표의 조합이 아니었나 하는 찜찜함이 따라온다. 이 불편함이 오히려 가장 큰 수확이다. 행동을 바꾸는 독서는 대개 자존심을 먼저 건드리니까.

저자는 마케팅이 감이나 직관에 의존하는 행위라는 기존의 착각을 깨고, 오히려 증거 기반의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마치 과학자가 실험을 통해 가설을 증명하듯, 이 책은 여러 데이터와 사례를 통해 '어떤 마케팅 전략이 효과적인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충성 고객'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내용이었다. 흔히 마케팅에서는 소수의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이 책은 가벼운 고객, 즉 '라이트 유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마케팅의 성패는 소수의 핵심 고객을 넘어, 수많은 라이트 유저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도달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마케팅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가장 크게 남은 문장은 이것이다. 측정은 주장보다 느리지만 결국 더 멀리 데려간다는 사실. 눈에 띄는 단일 캠페인의 성과보다, 도달과 침투를 꾸준히 확장하는 노력이 장기 성장을 만든다는 관점이 실무의 초조함을 다독인다. 단기 전환을 겨냥한 집행과 브랜드 자산을 키우는 투자의 균형을 다시 묻게 된다. '기억 속 가용성'을 넓히는 일에 내가 얼마나 일관되게 시간을 태웠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유행어가 아니라 관찰과 반복 실험의 언어로 말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성공 사례집 대신 시장의 평균과 분포, 실제 사람들의 구매 습관을 보여주고, 거기서 벗어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가설을 세운다. 문장은 절제돼 있고, 그 절제가 오히려 강하다. 정답을 속삭이기보다 검증 가능한 질문을 남겨서 마케팅을 과학과 장인의 접점으로 끌고 온다.

브랜딩을 보는 시야도 넓어진다. 차별화의 수사를 키우기보다 구매의 편의성과 일상의 노출, 기억의 연결을 중시하는 시선이 나온다. 그래서 크리에이티브가 가벼워지는 게 아니라 더 어려워진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단순함, 어디서나 부딪히는 일관성, 시간이 쌓여야 생기는 신뢰. 이 느린 것들의 합이 성장의 공식이라는 메시지가 '한 방'의 유혹을 부드럽게 식힌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마케팅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안한다는 점이다. '무엇을 어떻게 팔아야 할까?'라는 고민 대신,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를 고민하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은 마케터를 '성장 스토커'로 훈련시킨다. 가설을 세우고, 측정하고, 학습하고, 다시 설계하는 순환. 그 과정에서 오판을 인정하는 용기와 내부 설득을 위한 맑은 언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책을 덮고 나면 자연스레 다음 분기 계획을 손보게 된다. 채널 믹스의 비중을 바꾸고, 브랜드 자산 지표의 관측 주기를 길게 잡고, 캠페인 브리프 첫 페이지에 "이번 실험이 검증하려는 가설은 무엇인가"라는 문장을 고정하고 싶어진다.

정리하면, '마케팅 한다는 착각'은 "더 크게 말하라"가 아니라 "더 정확히 보라"고 말하는 책이다. 화려함을 덜어내고 근거를 쌓는 일, 그리고 그 근거 위에서 장기와 단기를 함께 세공하는 태도. 빠름과 요란함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이 책은 느리고 조용하지만 단단한 기준선을 그어 준다. 마케팅 전문가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업을 키우고 싶어 하는 창업가, 그리고 마케팅에 대해 막연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일반 독자들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복잡한 이론을 넘어 실질적인 인사이트를 얻고 싶다면, 이 책이 그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읽고 나면 덜 흥분하고, 더 많이 성장하게 된다.

2025.08.19 - [Business] - 전통의 지혜로 건강하게, 노후도 든든하게

전통의 지혜로 건강하게, 노후도 든든하게

https://youtu.be/IQiyzn3O5Jg?si=2SYssWXXsXKR-S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