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도원에서 나이 많은 수도사가
정원에서 흙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수도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수도사가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수도사들로부터
'거만'하다는 평을 받고 있었습니다.
나이 많은 수도사가 후배 수도사에게 말했습니다.
"이 단단한 흙 위에 물을 좀 부어주겠나?"
젊은 수도사가 물을 부었습니다.
그러나 물은 옆으로 다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나이 많은 수도사는
옆에 있는 망치를 들어 흙덩어리를 깨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부서진 흙을 모아 놓고
젊은 수도사에게 다시 한 번
물을 부어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물은 잘 스며들었고
부서진 흙이 뭉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나이 든 수도사가
젊은 수도사에게 말했습니다.
"이제야 흙 속에 물이 잘 스며드는구먼.
여기에 씨가 뿌려지면 싹이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거야.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우리 역시 부서져야
씨가 뿌려지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거지."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음의 토양이 어떠한지에 따라
좋은 사람들이 모여들 수도,
남김없이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좋은 땅이 되십시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각을 세우는
'굳어진 토양'이 아닌
상대를 위해 자신을 부스러뜨리는
겸손한 '부드러운 토양'이 되십시오.
❛하나님은 부서진 것들을 사용하신다❜는
히브리 격언이 있습니다.
단단한 곡식이 부서져야 빵이 됩니다.
포도주도, 향수도
잘게 부서짐을 통하여
만들어 집니다.
단단하고 질긴 음식도
우리의 입 안에서
고르고 잘게 부서져야
소화되어 영양분이 됩니다.
사람도 원숙한 인격과 신앙을 갖추려면
반드시 부서지는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부서짐의 size가
성숙의 size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이면 시골에서는 도리개질 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거두어들인 곡식을 앞마당에 펼쳐 놓고
사정없이 도리개로 후려칩니다.
곡식들의 신음소리에도
“왜, 나만 때려?!”
곡식들의 저항소리에도
“이제, 그만 좀 때려?!”
농부는 아랑곳 하지 않고
한참을 내려칩니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아프라고 때리는 것이 아닙니다.
미워서 때리는 것도 아닙니다.
껍데기를 벗겨내기 위함입니다.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기 위함입니다.
더 잘게 부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하나님도
우리에게 도리개질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말이죠.
우리는 너무 아파서
'왜, 나만 때리냐고?' 불평도 합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워서야
누가 예수를 믿겠느냐고'
투덜대기도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도리개질은 멈추지 않습니다.
더 많이 부서지라 하심입니다.
더 많이 깨어지라 하심입니다.
더 많이 죽으라 하심입니다.
도리개질의 강도가
하나님 사랑의 깊이입니다.
왜냐하면,
부서져야 사용하시고,
부셔진 만큼 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글 나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패의 자리에서 나를 보자 (0) | 2020.06.12 |
---|---|
실패의 날 (4) | 2020.05.31 |
두 가지 행복 (2) | 2020.04.29 |
이제 채널을 바꿉시다 (0) | 2020.04.15 |
헤밍웨이(Hemingway)의 법칙 (2) | 2020.04.11 |